대법원 2024. 12. 18.자 2021모2650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
1. 판결의 요지
재항고인(당시 19세)은 1964년 생면부지인 A가 재항고인을 넘어뜨리고 강제로 입을 맞추려고 하면서 혀를 재항고인의 입속으로 넣자 A의 혀를 물어끊었는데, 이를 이유로 중상해죄로 구속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그 무렵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재항고인은 수사기관에서의 불법 구금에 의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가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등을 주장하면서 재심을 청구하였습니다.
원심은, 재항고인이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 협박, 자백강요 등을 주장한 적이 없었던 점, 불법 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재항고인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항고인의 재심청구를 기각한 제1심결정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불법 구금에 관한 재항고인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그 진술에 부합하는 직·간접의 증거들 즉, 재심대상 판결문, 당시의 신문기사, 재소자인명부, 형사사건부, 집행원부 등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일련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의 사정들이 제시된 반면, 그 진술과 모순되거나 진술내용을 탄핵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재항고인은 검찰에 처음 소환된 1964. 7. 초순경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집행된 것으로 보이는 1964. 9. 1.까지의 기간 동안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이와 같은 검사의 행위는 형법 제124조의 직권남용에 의한 체포·감금죄를 구성하며, 위 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유죄판결을 얻을 수 없는 사실상·법률상 장애가 있는 경우로서 형사소송법 제422조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원심으로서는 재항고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반대되는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조사를 하였어야 한다고 보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2. 적용법리
형사소송법 제422조에 따라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유념할 사항, 재심청구인의 범죄의 피해자로서 하는 진술 그 자체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서 규정한 재심이유인 ‘직무에 관한 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증거로 제출된 경우 재심청구를 받은 법원이 취하여야 할 조치
1)
형사재판에서 재심은 유죄의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잘못을 바로잡고자 마련한 비상구제절차이다(대법원 2018. 5. 2. 자 2015모3243 결정 참조).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를 재심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그러한 직무범죄가 확정됨으로써 원판결 등에 사실오인의 잘못이 있다는 점이 현저하게 추측된다는 이유에서 이를 재심사유로 하여 제1심 혹은 상소심의 공판절차에 따라 다시 심리하여 재판을 하도록 한 것이다.
2)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전 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그 사실을 증명하여’란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과 형사소송법 제420조와 제421조가 재심이유로 규정한 범죄행위 등이 행하여졌다는 사실을 각 증명하여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때의 증명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이다.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재심은 확정판결의 중대한 오류를 시정하고 일반적인 형사재판절차에서 형사소송원칙에 따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억울한 피고인을 구제하여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매우 다양한 점 등을 유념하고 구체적인 사건에서 비상구제절차인 재심제도의 목적과 이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취지 등을 두루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3)
재심청구인이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서 규정한 범죄의 피해자로서 하는 진술 그 자체가 재심이유인 ‘직무에 관한 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증거로 제출되었음에도 그 범죄의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하여 확정판결로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 재심청구인의 범죄 피해에 관한 진술 내용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이고, 진술 자체로 모순되거나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나 사정과 모순되지 않으며, 재심청구인이 허위로 진술할 뚜렷한 동기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등 그 진술에 충분한 신빙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술에 부합하는 직접ㆍ간접의 증거들이 상당수 제시된 반면, 그 진술과 모순되거나 진술내용을 탄핵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 그 진술만으로 법이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는 정도에 이를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재심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하여 재심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
4)
재심의 청구를 받은 법원은 재심청구의 이유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을 조사할 수 있고(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이때 공판절차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을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사실조사가 필요한지 여부의 판단은 법원의 재량이지만, 재심청구인의 진술 그 자체가 재심이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증거로서 신빙성이 있고 그 진술의 내용 자체나 전체적인 취지에 부합하는 직접·간접의 증거들이 상당수 제시된 경우에는, 그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반대되는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별다른 사실조사도 없이 만연히 ‘재심청구인의 진술’ 외에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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