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5다215526 판결
1.
판결의 요지
국책사업인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Korean Helicopter
Program)에 개발주관사업자 중 하나로 참여하여 국가 산하 중앙행정기관인 방위사업청과 ‘한국형헬기 민군겸용 핵심구성품 개발협약’을 체결한 甲 주식회사가 협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환율변동 및 물가상승 등 외부적 요인 때문에 협약금액을 초과하는 비용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초과비용의 지급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안에서, 위 협약의 법률관계는 공법관계에 해당하므로 이에 관한 분쟁은 행정소송으로 제기하여야 한다고 한 판결입니다.
원고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행정소송으로 제기하여야 할 사건을 민사소송으로 잘못 제기한 경우, 수소법원이 취하여야 할 조치는 관할법원 이송이라고 보았습니다.
2.
사실관계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이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가. 피고는 군이 운용 중이던 노후화된 외국산 헬기를 국산화하여 전력화함과 아울러 군용 헬기는 물론 민수 헬기에도 사용할 수 있는 민·군 겸용 구성품을 개발하여 장차 민간에서 사용하는 헬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국형 기동헬기를 국내 연구개발을 통하여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2005년경부터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Korean Helicopter
Program, 이하
‘KHP사업’이라고 한다)을 산업자원부와 방위사업청의 주관하에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나. 이 사건 KHP사업에 관하여 원고, 국방과학연구소 및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개발주관사업자로 참여하였는데, 원고는 분담된 체계 및 구성품 개발업무 수행, 체계규격서 작성, 체계개발동의서 작성, 개발시험평가 수행 및 운용시험평가 지원을 통하여 체계개발을 종합적으로 주관하고 체계결합을 책임지는 역할을, 국방과학연구소 및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를 지원하고 민·군 겸용 핵심구성품 및 군용 핵심구성품 일부를 책임지는 역할을 각기 담당하기로 하였다.
다. 이에 피고 산하 방위사업청(이하 ‘피고’라고만 한다)은 2006. 6. 7. 원고와 사이에 ‘한국형헬기 민군겸용 핵심구성품 개발’ 협약(이하 ‘이 사건 협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헬기기술자립화사업으로서 기어박스 등 12개 부품 및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협약금액은 133,015,000,000원(정부출연 106,412,005,000원, 업체투자 26,602,995,000원)이며, 협약기간은 2006. 6. 1.부터 2012. 6. 30.까지, 납품일자는 2008. 10. 30.부터 2012. 6. 30.까지로 되어 있다.
3. 원심의 판단
가. 원고는 이 사건 협약에 대해서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이라고 한다)이 적용되므로 국가계약법 제19조, 이 사건 협약 특수조건 제9조 제1항에 의하여 원고가 이 사건 협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환율변동 및 물가상승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하여 협약금액을 초과하는 비용이 발생하였다면 그 초과비용을 피고가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협약은 국가계약법이 적용되는 사법상 계약이 아니라, 항공우주산업법 제4조 제1항 제2호, 같은 조 제3항 및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 제2조 제1호, 제9조 제1항에 근거한 ‘협약’으로서 공법상 법률관계에 해당하고, 또한 원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협약 특수조건 제9조 제1항에 근거한 정산금 지급 청구권은 피고(사업단)의 승인이라는 별도의 행정행위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으로서 위와 같은 정산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는 행정소송에 해당하므로, 민사소송으로 제기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는 본안전 항변을 하였다.
나. 이에 대하여 원심은, 이 사건 협약은 피고 산하 산업자원부로부터 출연금 예산을 지원받아 이루어져 형식적으로는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 등에 근거한 ‘협약’의 형태로 체결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고가 피고에게 한국형헬기의 민·군 겸용 핵심구성품을 연구·개발하여 납품하고, 피고가 원고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피고가 우월한 공권력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사경제의 주체로 원고와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에 따라 체결한 사법상 계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협약 특수조건 제44조에서 협약 당사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여 소송에 의할 경우 그 관할법원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협약에 관한 법률상의 분쟁은 민사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피고의 본안전 항변을 배척하였다.
4.
대법원의 판단
가. (1) 과학기술기본법은 제11조에서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기본계획에 따라 맡은 분야의 국가연구개발사업과 그 시책을 세워 추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과학기술기본법의 위임에 따라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구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2010. 8. 11. 대통령령 제22328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이라고 한다)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이란 중앙행정기관이 법령에 근거하여 연구개발과제를 특정하여 그 연구개발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연하거나 공공기금 등으로 지원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사업을 말하고, 출연금이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가 등이 반대급부 없이 예산이나 기금 등에서 연구수행기관에 지급하는 연구경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제1호, 제7호).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에 의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연구개발과제에 대하여 주관연구기관의 장과 연구개발계획서, 참여기업에 관한 사항, 연구개발비의 지급방법 등에 관한 사항이 포함된 협약을 체결하여야 하고(제7조 제1항),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연구개발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연할 수 있으며,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참여기업이 있는 경우 중앙행정기관과 참여기업의 연구개발비 출연·부담 기준에 의하고(제10조),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수행결과로 얻어지는 지식재산권 등 무형적 결과물은 협약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주관연구기관 또는 참여기관의 소유로 하거나 주관연구기관과 참여기관의 공동소유로 할 수 있고, 국가 안보상 필요한 경우 등에는 국가의 소유로 할 수 있으며(제15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연구기관 또는 참여기업에 대하여 협약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제20조).
한편 항공우주산업개발 촉진법(이하 ‘항공우주산업법’이라고 한다)은 제4조 제1항 제2호에서 정부는 기동용회전익항공기·공격용회전익항공기의 개발에 관한 사업 등에 관한 시책을 추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4조 제2항에서 정부는 이를 위하여 국·공립연구기관, 국방과학연구소, 항공우주산업 및 관련 기술과 관련된 기관·단체 또는 사업자 등으로 하여금 사업을 실시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4조 제3항에서 정부는 항공우주산업의 육성을 위한 사업을 실시하는 자에 대하여 그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 협약 특수조건에 의하면, 이 사건 협약의 목적은 KHP사업 공동규정(산업자원부 및 방위사업청 공동훈령) 등에 의거하여 원고가 그 하도급업체들과 함께 한국형헬기 민·군 겸용 핵심구성품을 연구·개발하여 납품하는 데 있으며, 피고는 원고에게 그 대가를 지급한다는 것이고(제2조), 원고는 협약체결 시 협약이행의 보증으로 협약금액의 100분의 10 이상의 금액을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37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증권 또는 보증서로 납부하여야 하는데, 협약보증금의 반환, 국고귀속 등에 대해서는 국가계약법상의 계약보증금 반환, 국고귀속 등의 조항을 준용하고(제7조), 협약체결 시의 협약금액 이외의 초과비용은 인정하지 않는데, 다만 협약목적물 및 개발계획의 변경에 따른 초과비용이나 개발계획서상의 물가상승, 환율변동, 기술변경, 소요변경 등의 차이에 의한 초과비용 등은 피고와 협의하여 사업비 증가에 따른 협약변경을 할 수 있으나 피고(사업단)의 승인분에 한하고(제9조), 원고와 피고 간에 분쟁이 발생하여 30일 이내에 협약당사자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때에는 소송에 의하여 해결하되 그 관할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한다는 것이다(제44조).
(2)
위 각 법령의 입법 취지 및 규정 내용과 함께 이 사건 협약 제2조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그 대가’를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에 근거하여 피고가 원고에게 연구경비로 지급하는 출연금을 지칭하는 데 다름 아니라는 점, 이 사건 협약에 정한 협약금액은 정부의 연구개발비 출연금과 참여기업의 투자금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사건 협약 특수조건 제9조 제1항에 의하여 참여기업이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피고에게 협약금액의 증액을 내용으로 하는 협약변경을 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이 사건 KHP사업에 대한 정부출연금의 증액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하여는 피고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는 점, 이 사건 협약은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한국형헬기 민·군 겸용 핵심구성품을 개발하여 그 기술에 대한 권리는 방위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국가에 귀속시키되 장차 그 기술사용권을 원고에게 이전하여 군용 헬기를 제작·납품하게 하거나 또는 민간 헬기의 독자적 생산기반을 확보하려는 데 있는 점, 이 사건 KHP사업의 참여기업인 원고로서도 민·군 겸용 핵심구성품 개발사업에 참여하여 기술력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군용 헬기 양산 또는 민간 헬기 생산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에 근거하여 피고 산하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참여기업인 원고 사이에 체결된 이 사건 협약의 법률관계는 공법관계라고 보아야 하고(대법원 1997. 5. 30. 선고 95다28960 판결, 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2두28704 판결, 대법원 2015. 12. 24. 선고 2015두264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협약 특수조건 제7조에서 협약보증금의 반환, 국고귀속 등에 대하여, 제15조에서 지체상금에 대하여 각기 국가계약법의 관련 조항을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다거나 나아가 제44조에서 원고와 피고 간의 분쟁에 관하여 관할법원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정하였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나. 한편 민사소송법 제31조는 전속관할이 정하여진 소에는 합의관할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29조, 변론관할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30조가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민사소송법 제34조 제1항은 법원은 소송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관할권이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이를 관할법원에 이송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소송법 제7조는 “민사소송법 제34조 제1항의 규정은 원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행정소송이 심급을 달리하는 법원에 잘못 제기된 경우에도 적용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관할 위반의 소를 부적법하다고 하여 각하하는 것보다 관할법원에 이송하는 것이 당사자의 권리구제나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원고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행정소송으로 제기하여야 할 사건을 민사소송으로 잘못 제기한 경우, 수소법원으로서는 만약 그 행정소송에 대한 관할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이를 행정소송으로 심리·판단하여야 하고(대법원 1996. 2. 15. 선고 94다3123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 행정소송에 대한 관할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면 당해 소송이 이미 행정소송으로서의 전심절차 및 제소기간을 도과하였거나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 등이 존재하지도 아니한 상태에 있는 등 행정소송으로서의 소송요건을 결하고 있음이 명백하여 행정소송으로 제기되었더라도 어차피 부적법하게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이를 부적법한 소라고 하여 각하할 것이 아니라 관할법원에 이송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8다16707 판결, 대법원 2009. 9. 17. 선고 2007다242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제1심과 원심은, 이 사건 협약이 사법(私法)상 계약이고 분쟁이 발생하여 소송에 의할 경우 그 관할법원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정하였다는 이유로 이 사건 협약에 관한 분쟁은 민사소송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후 본안판단으로 나아갔으니, 이러한 제1심과 원심의 판단에는 이 사건 협약의 법률관계 및 쟁송 방식에 관한 법리와 전속관할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에 이송한다.
정회목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