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4. 4. 12. 선고 2023도13406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준강간)
1. 판결의 요지
피고인들이 망인과 합동하여 2006. 11.경 피해자(여, 당시 14세)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였다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준강간)으로 기소된 사안입니다.
원심은, 망인이 2021. 3. 31.경 자살하기 직전 작성한 유서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되었다고 보아 형사소송법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①
망인이 사건 이후 14년 이상 경과하도록 피고인들이나 피해자에게는 물론,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이 사건을 언급하거나 죄책감 등을 호소한 적이 없어 자신의 범행을 참회할 의도로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 정도로 작성 동기나 경위가 뚜렷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점, ②
망인은 수사기관에서조차 이 사건 유서의 작성 경위, 구체적 의미 등에 관하여 진술한 바가 없는 점, ③
이 사건 유서가 사건 발생일 즈음이 아니라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14년 이상 경과된 이후 작성된 점, ④
망인이 자살 직전 A4 용지 1장 분량으로 작성한 이 사건 유서는 그 표현이나 구체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실제 이 사건 유서에는 피고인들의 구체적인 행위내용에 관한 세세한 묘사 없이 ‘유사성행위’, ‘성관계’라고 추상적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 정황이나 실행행위 분담 내용, 시간적·장소적 협동관계에 관한 구체적·세부적 기재가 없으며, 그 기재 내용이 객관적 증거, 진술증거로 뒷받침된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⑤
이 사건 유서의 내용 중 피해자의 진술 등과 명백히 배치되는 부분도 존재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에 대한 반대신문이 가능하였다면 그 과정에서 구체적, 세부적 진술이 현출됨으로써 기억의 오류, 과장, 왜곡, 거짓 진술 등이 드러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이 사건 유서의 내용이 법정에서의 반대신문 등을 통한 검증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빙성이 충분히 담보된다고 평가할 수 없고, 따라서 이 사건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보아, 이 사건 유서를 유죄의 주요 증거로 삼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2. 적용법리
형사소송법 제314조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의 의미 및 그에 관한 증명의 정도
형사소송법 제314조에서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란 그 진술 내용이나 조서 또는 서류의 작성에 허위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그 진술 내지 작성 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대법원 2006. 9. 28. 선고 2006도3922 판결 등 참조).
형사소송법은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조서 등 서면증거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 아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데, 이는 실체적 진실발견의 이념과 소송경제의 요청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므로, 그 증거능력 인정 요건에 관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13조는 진술조서 등에 대하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는 등 엄격한 요건이 충족될 경우에 한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직접심리주의 등 기본원칙에 대한 예외를 정하고 있는데, 형사소송법 제314조는 원진술자 또는 작성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등의 사유로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진술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다는 점이 증명되면 원진술자 등에 대한 반대신문의 기회조차도 없이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중대한 예외를 인정한 것이므로, 그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14조에서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에 대한 증명’은 단지 그러할 개연성이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 즉 법정에서의 반대신문 등을 통한 검증을 굳이 거치지 않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어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와 전문법칙에 대한 예외로 평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0도12 판결, 대법원 2014. 2. 21. 선고 2013도12652 판결,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16도17054 판결 등 참조).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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