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판결
1.
판결의 요지
회사의 은행에 대한 대출금 담보를 위해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자(회사 운영자)에 대하여 '은행(채권자)이 담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담보물을 보관·관리할 의무나 임무를 위배하여 타에 매각함으로써 채권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는 사실로 배임죄로 기소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금전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신임을 기초로 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고 할 수 없고, 금전채무의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신의 급부의무의 이행으로서 행하는 것이므로 이를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채무자가 채무를 담보하기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급부의무로 이를 이행하는 것은 자신의 사무이고, 담보설정계약의 체결이나 담보권 설정 전후를 불문하고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ㆍ본질적 내용은 여전히 금전채권의 실현 내지 피담보채무의 변제에 있으므로 담보설정계약상의 의무를 이유로 담보를 제공한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없으므로 채무자가 담보물을 처분하였다 하여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와 다른 취지의 종래 판례를 변경하고, 배임죄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판결입니다.
2.
적용 법리
동산을 양도담보에 제공한 채무자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소극)
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대법원 1987. 4. 28. 선고 86도2490 판결,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8도11722 판결,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5도1301 판결 등 참조),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나.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내지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다.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여 이를 채권자에게 양도할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되고, 주식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제3자에게 해당 주식을 처분한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라.
이와 달리 채무담보를 위하여 동산이나 주식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한 대법원 1983. 3. 8. 선고 82도1829 판결, 대법원 1998. 11. 10. 선고 98도2526 판결, 대법원 2007. 6. 15. 선고 2006도3912 판결, 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9도13187 판결, 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10도11293 판결, 대법원 2011. 11. 22. 선고 2010도7923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3.
법원의 판단
1)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공소외 1 주식회사(이하 ’공소외 1 회사‘라 한다)를 운영하는 피고인이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으로부터 1억 5,000만 원을 대출받으면서 위 대출금을 완납할 때까지 골재생산기기인 ’크라샤4230‘(이하 ’이 사건 크러셔‘라 한다)을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으므로,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이 담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위 크러셔를 성실히 보관․관리하여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그러한 임무에 위배하여 위 크러셔를 다른 사람에게 매각함으로써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에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가하였다는 것이다. 원심은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2)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은 피고인이 운영하는 공소외 1 회사가 공소외 2 은행에 대한 대출금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공소외 1 회사 소유의 이 사건 크러셔에 관하여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를 설정하고, 공소외 1 회사의 채무불이행 시 양도담보권의 실행, 즉 이 사건 크러셔를 처분하여 그 매각대금으로 채무의 변제에 충당하거나 채무의 변제에 갈음하여 공소외 2 은행이 담보목적물을 취득하기로 하는 내용의 전형적인 양도담보계약임을 알 수 있다.
3)
한편,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 제2조, 제4조 등에는 ‘담보목적물은 설정자가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점유․사용․보전․관리한다’, ‘설정자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점유․사용․보전․관리하여야 한다’ 등과 같이 담보설정자(공소외 1 회사)의 담보목적물(이 사건 크러셔)의 보전·관리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계약서의 기재 내용만으로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이 전형적인 양도담보계약이 아니라거나 양도담보계약과 별도로 공소외 2 은행이 공소외 1 회사에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이 사건 크러셔의 보관․관리에 관한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는 내용의 특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가)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상 ‘담보목적물은 설정자가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점유․사용․보전․관리한다’는 기재는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양도담보를 설정한다는 것, 즉 담보설정자는 점유매개관계를 설정하여 채권자에게 간접점유를 취득시키고 스스로 점유매개자로서 점유를 계속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는 담보설정자가 담보물의 보전․관리 등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면서 담보물을 영업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정하는 한편(제2조, 제12조), 담보물이 멸실․훼손되거나 그럴 염려가 있는 경우 채권자의 청구에 따라 담보설정자가 상당액의 물건을 보충하여 채권자에게 양도하여야 한다고 정하여(제4조 제1항, 제5조) 멸실․훼손에 따른 위험을 담보설정자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으며, 나아가 물상대위에 관하여도 정하고 있다(제10조). 이러한 계약 내용은 양도담보설정계약의 전형적인 내용이다.
나) 담보설정자는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에 따라 담보목적물을 현실로 인도할 때까지 담보물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할 의무를 부담하지만(민법 제374조), 이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는 거래상 일반적으로 평균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 정도를 의미할 뿐이고, 담보설정자가 담보목적물을 ‘보존할 의무’는 담보권 실행 시 채권자나 채권자가 지정하는 자에게 ‘인도할 의무’에 부수하는 의무이자, 채무불이행 시 담보권 실행 및 이를 통한 채권의 만족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당연히 수반되는 의무에 불과하다.
4)
결국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에서 공소외 1 회사와 공소외 2 은행 간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대출금 채무의 변제와 이를 위한 담보에 있고, 공소외 1 회사를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공소외 2 은행과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공소외 2 은행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공소외 1 회사를 운영하는 피고인을 공소외 2 은행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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