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4. 2. 29. 선고 2023도8603 통신비밀보호법위반등
1. 판결의 요지
피고인은 2020. 2.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 거실에 녹음기능이 있는 영상정보 처리기기(이른바 ‘홈캠’)를 설치하였고, 2020. 5. 1. 13:00경 위 거실에서 배우자와 그 부모 및 동생이 대화하는 내용이 위 기기에 자동 녹음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 대화를 청취하고 그 내용을 누설”하여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3조를 위반한 것으로 기소된 사안입니다.
원심은,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상 ‘청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고, 대법원도 아래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수긍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2. 적용법리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6조 제1항에서 ‘청취’의 의미
통신비밀보호법(이하 법명은 생략한다) 제3조 제1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6조 제1항은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청취’는 타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그 대화의 내용을 엿듣는 행위를 의미하고, 대화가 이미 종료된 상태에서 그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행위는 ‘청취’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제3조 제1항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 ‘대화’를 ‘청취’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화’는 ‘원칙적으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육성으로 말을 주고받는 의사소통행위’로서(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6도19843 판결 참조), 이러한 의사소통행위가 종료되면 청취 대상으로서의 대화도 종료된다.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것은 대화 자체의 청취라고 보기 어렵고, 제3조 제1항이 대화 자체 외에 대화의 녹음물까지 청취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 이러한 ‘대화’의 의미나 제3조 제1항의 문언에 비추어 보면, ‘대화’와 구별되는 ‘대화의 녹음물’까지 청취 대상에 포함시키는 해석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2)
제14조 제1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금지되는 청취행위를 구체화하여 제한하고 있다. 이는 타인간의 비공개 대화를 자신의 청력을 이용하여 듣는 등의 행위까지 처벌대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엿들을 수 있는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청취만을 금지하고자 하는 취지의 조항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미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청취는 이와 같이 제14조 제1항이 금지하고자 하는 청취에 포함되지 않는다.
3)
제3조 제1항, 제16조 제1항은 ‘녹음’과 ‘청취’를 나란히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녹음’과 ‘청취’의 공통 대상이 되는 ‘대화’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일한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녹음’의 일상적 의미나 통신비밀보호법이 ‘녹음’을 금지하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제3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타인간 대화의 녹음은 특정 시점에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를 실시간으로 녹음하는 것을 의미할 뿐 이미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한 뒤 이를 다시 녹음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녹음’의 대상인 ‘대화’가 녹음 시점에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를 의미한다면, 같은 조항에 규정된 ‘청취’의 대상인 ‘대화’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청취 시점에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4)
통신비밀보호법상 ‘전기통신의 감청’은 전기통신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그 전기통신의 내용을 지득ㆍ채록하는 경우 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이미 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관하여 남아 있는 기록이나 내용을 열어보는 등의 행위는 포함하지 않는다(대법원 2016. 10. 13. 선고 2016도8137 판결 및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을 달리 취급하는 제9조의3 등 참조). 한편 통신비밀보호법상 ‘전기통신의 감청’과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의 청취’는 대상(‘음향 등’과 ‘육성으로 주고받는 말’), 수단(‘전자장치·기계장치 등’과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 및 행위 태양(‘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는 것 등’과 ‘청취’)에 있어서 서로 중첩되거나 유사하다(제2조 제3호, 제7호, 제14조 참조). 또한 통신비밀보호법은 ‘전기통신의 감청’에 관한 다수 규정들(제4조 내지 제8조, 제9조 제1항 전단 및 제3항, 제9조의2, 제11조 제1항, 제3항, 제4항, 제12조)을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의 청취’에도 적용함으로써 그 범위에서 양자를 공통으로 규율하고 있다(제14조 제2항). 이러한 ‘전기통신의 감청’과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의 청취’의 개념 및 규율의 유사성 등 양자의 체계적 관계에 비추어 보면, ‘전기통신의 감청’과 마찬가지로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의 청취’ 역시 이미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듣는 행위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5)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행위도 제3조 제1항의 ‘청취’에 포함시키는 해석은 ‘청취’를 ‘녹음’과 별도 행위 유형으로 규율하는 제3조 제1항에 비추어 불필요하거나 ‘청취’의 범위를 너무 넓혀 금지 및 처벌 대상을 과도하게 확장할 수 있다. 위법한 녹음 주체가 그 녹음물을 청취하는 경우에는 그 위법한 녹음을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삼으면 충분하고, 녹음에 사후적으로 수반되는 청취를 별도의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삼을 필요성이 크지 않다. 또한 적법한 녹음 주체 또는 제3자가 그 녹음물을 청취하거나, 위법한 녹음물을 녹음 주체 외의 제3자가 청취하는 경우까지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삼으면 이들의 행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게 된다. 나아가 이는 명문의 형벌법규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하기보다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타당하지 않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2도4230 판결, 대법원 2018. 3. 15. 선고 2017도21656 판결 등 참조).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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