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 2018. 5. 1. 선고 2017가단547513 판결
1.
사실관계
가. 원고(이하 ‘원고 회사’라고 한다)는 도료 제조 및 가공업, 도료 도·소매업을 주된 사업 목적으로 하는 페인트 제조회사로서 도금보호용도료 등 자동차용 도료, 가전용 도료, 휴대폰용 도료, 화장품용기용 도료 등을 생산하고 있는 회사이고, 피고는 2013. 3.경 원고 회사에 입사하여 2016. 11.경까지 재직하다가 퇴사한 사람이다.
나. 피고는 대학에서 ‘B공학’을 전공한 자로 원고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 기술부서에서 물성시험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자동차용 개발 업무를 담당하였다.
다. 피고는 2014. 12. 17. 업무 수행 서약서와 비밀유지서약서를 각 작성하여 원고 회사에게 교부하였고, 퇴사 직전인 2016. 11. 18. 영업비밀보호서약서를 작성하여 원고 회사에게 제출하였는데, 위 각 서약서에는 2년간의 동종기업 전직금지 및 위반시 년봉의 2배의 위약금을 정하고 있는 전직금지약정(이하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이라고 한다)이 포함되어 있었다.
라. 피고는 2016. 12.경 도료업체인 중부에스켐 주식회사(이하 ‘중부에스캠’이라고만 한다)에 입사하였다.
마. 원고 회사는 피고를 상대로 경업금지가처분을 신청하여 2017. 10. 24. 항고심에서 ‘파고는 2017. 11. 20.까지 중부에스켐 주식회사에 근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결정을 받았다(서울고등법원 2017라20451호).
2.
법원의 판단 -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
가. 전직금지약정의 무효 여부
1)
관련 법리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전직금지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3. 10. 17.자 2013마1434 결정, 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등 참조). 한편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라 함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규정된 ‘영업비밀’ 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더라도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어거나 고객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창조).
2)
판단
다음의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이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1)
원고 회사는 1998. 8. 경 설립된 이래로 도료의 개발 및 제조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수행하여 왔고, 특히 2010년경부터 자동차용 도금보호기능 도료의 개발에 주력하여 2015. 4. 20. 이에 대한 자동차 회사의 신뢰성 평가를 통과한 후, 2016. 2.경 생산승인을 받아 그 무렵부터 위 도료를 자동차 부품 회사에 납품하여 왔다.
(2)
위와 같은 자동차용 도료의 개발 및 양산에 있어서는 원료들을 특정 비율에 따라 배합하여 도료가 적합한 물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한 요소로서 그러한 배합비율을 찾아내는 것은 시행착오가 많아 장기간 연구가 필요한데, 원고 회사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동차용 도금보호기능 로료를 개발하였다.
(3)
원고 회사는 자동차용 도료에 관한 원료 배합비율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시험에 사용되는 원료명을 모두 코드화하여 소수의 직원만 원료 명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고, 원고 회사 소속 연구원이 시험을 하면서 작성한 보고서를 모두 제출받아 보관함으로써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관리하여 왔다.
(4)
위와 같은 연구과정을 거쳐 알게 된 원고 회사의 자동차용 도료의 원료 배합비율 및 각 비율별 도료의 물성에 대한 정보들은 공연히 알려지지 않은 기술정보이고, 중부에스켐 등 경쟁회사가 이를 알게 되는 경우 유리한 출발 내지 시간절약이라는 부당한 이익을 취득할 위험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바, 원고 회사의 자동차용 도료의 원료 배합비율 및 각 비율별 도료의 물성에 대한 정보는 원고 회사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나)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1)
피고는 00대학교 B공학과 졸업 후 2013. 9.경 원고 회사에 입사하면서 기술연구소 C부에 배치되어 자동차용 도료배합실험 업무를 담당하였고, 2014. 5.경부터 2016. 11.경까지 자동차용 도료에 요구되는 물성인 부착성, 내온수, CHIPPING 등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시편을 제작하였다.
(2)
피고가 작성한 연구보고서에는 원고 회사가 암호화한 각 원료의 코드 및 그 배합비율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3)
이로부터 보면, 피고는 위와 같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각종 자료를 열람하는 등의 방법으로 원고 회사의 자동차용 도료 제조 관련 기술적 정보를 익힐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 업무 수행이 비록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상급자의 지시 이행에 불과하여 원고 회사의 자동차용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웠다고 보이지는 아니한다.
(4)
따라서 피고는 원고 회사의 자동차용 도료 제조 관련 기술적 정보를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 근로자의 퇴직 경위 등
(1)
피고는
2016. 11. 20. 자신의 의사에 따라 원고 회사에서 퇴직하여 그로부터 10일 후에 중부에스켐에서 근무하였는데, 피고의 퇴직 과정에서 원고 회사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거나 원고 회사가 피고를 불리하게 처우하였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2)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상 전직이 제한되는 동종기업은 도료업계의 경쟁회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어 전직금지 대상이 지나치게 넓다고 보이지 아니하고, 위 규정에는 동종기업의 예시가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그중에 피고가 이직한 중부에스켐이 포함되어 있다.
(3)
원고 회사가 피고에게 전직금지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여 허용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앞서 본 여러 사정들을 두루 종합하면, 원고 회사가 피고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이 사건 전적금지약정이 피고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여 무효라고는 단정할 수는 없다.
나. 원고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바 없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는, 중부에스켐이 자동차외장도료를 생산하지 아니하므로 원고 회사에 아무런 손해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서 본 증거들에 의하면 중부에스켐은 자동차내외장도료를 개발 및 생산하거나 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부분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3.
손해배상액에 대한 판단
가.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 위반에 따른 배상 조항의 법적 성격
이 사건에서 원고 회사는 ‘피고의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 위반으로 인한 그 약정에서 예정한 금액의 청구’를 할 수 있을 뿐 달리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 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청구원인 기재상 명백하다.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에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연봉의 2배’를 피고가 원고 회사에 지급하기로 한 약정은 민법 제398조 제1항에셔 규정하고 있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판단된다.
나. 위와 같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는 이상 원고 회사에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손해배상예정액 지급의무의 발생요건은 아니다(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50350호 참조). 다만, 피고는 중부에스켐이 자동차외장도료를 생산하지 아니하므로 원고 회사에 아무런 손해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는바, 앞서 본 증거들에 의하면 중부에스켐은 자동차내외장도료를 개발 및 생산하거나 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부분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다. 손해배상예정액의 김액(민법 제398조 제2항)
1)
손해배상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 여기서 ‘부당히 과다한 경우’라고 함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각 지위, 계약의 목적 및 내용,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동기, 채무액에 대한 예정액의 비율, 예상 손해액의 크기, 그 당시의 거래 관행 등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일반 사회관념에 비추어 그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공정성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한편 위 규정의 적용에 따라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지의 여부 내지 그에 대한 적당한 감액의 범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법원이 구체적으로 그 판단을 하는 때 즉, 사실심의 변론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하여 그사이에 발생한 위와 같은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35771 판결 등 참조).
2)
살피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가 취업 후 약 3년간 원고 회사의 도료 관련 업무에 종사해 왔으므로 이와 관계없는 다른 업체로 전직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점, 원고 회사가 피고에게 전직금지에 대한 별도의 대가를 지급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점, 원고 회사의 보호 가치 있는 이익을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 전직금지 약정에서 정한 전직금지 기간은 피고에게 과도한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실제 앞서 본 경업금지가처분 사건에서는 그 금지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는 취지의 결정을 하였다), 기타 피고가 원고 회사 재직시 담당하였던 업무 및 직급, 이 사건 전직금지 약정에 따른 경엽금지가처분 사건의 진행 경과, 원고 회사의 실제 손해액을 산정할 만한 자료는 변론에서 현출되지 아니한 점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연봉의 2배’로 약정한 이 사건 손해배상예정액은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보이므로 이를 감액하여 1,500만원으로 감액한다.
라. 따라서, 피고는 원고 회사에게 1,500만원과 이에 대하여 피고가 전직금지약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는 2016. 11. 21.부터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18. 5. 1.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판한 특례법이 정한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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