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5. 7. 18. 선고 2022다311736 임대차보증금
1. 판결의 요지
원고는 임차인, 피고는 임대인으로 기간을 10년으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만약 임차인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되고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등에 근거하여 임차인의 관리인이 본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면 임차인은 일정 액수의 위약벌 및 손해배상예정액을 지급해야 하고 임대인은 이를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약정하였는데, 이후 원고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원고의 관리인이 피고와의 임대차계약을 해지하자, 피고가 원고의 회생절차에서 위 조항에 근거한 위약벌 및 손해배상예정액을 회생채권으로 신고한 다음, 원고가 반환을 구하는 임대차보증금에서 이를 각각 공제할 것을 주장한 사안입니다.
원심은, 원ㆍ피고 사이의 공제약정은 채무자회생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고, 선행 조사확정재판이 진행된 결과 10%로 감액된 손해배상예정액 및 위약벌 채권의 존재가 확정되었음을 전제로, 위 손해배상예정액과 위약벌 전부를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① 10%로 감액된 ‘손해배상예정액’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한 것은 정당하지만, ②
‘위약벌’은 원고의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벌에 해당할 뿐 원고가 반환받을 임대차보증금과 어떠한 견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이상 이를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ㆍ환송하였습니다.
2. 적용법리
가. 당사자 사이에서 공제약정을 체결할 때에 그 대상이 되는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요구되는지 여부(소극)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는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는 한 공제에 관한 약정을 할 수 있으므로, 공제 요건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공제 기준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지, 공제의 의사표시가 별도로 필요한지 등을 자유롭게 정하여 당사자 사이에 그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대법원 2024. 8. 1. 선고 2024다227699 판결 참조). 이때 당사자가 공제의 대상으로 약정하는 양 채권 사이에 반드시 어떠한 견련성이 있어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
나. 공제약정을 한 당사자 중 일방에 대하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에서 정한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견련성이 없는 채권을 공제하기로 한 약정이 계속 유효한지 여부(소극)
채무자회생법 제145조는, 회생채권자 또는 회생담보권자가 제한없이 상계권을 행사함에 따라 회생계획에 의하지 않고 채무자로부터 우선하여 변제를 받음으로써 회생채권자 등 상호간의 공평을 해하고 또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회생채권자 등의 상계를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규정으로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공제에는 상계 금지를 정한 채무자회생법 제145조를 비롯하여 상계적상, 상계의 기판력 등 상계에 관한 법률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이로써 상계보다 강한 담보적 효력을 가진다. 상계와 공제가 복수 채권·채무의 상호 정산을 내용으로 하는 채권소멸의 원인이라는 유사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공제에 관하여 채무자회생법 제14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는, 공제의 대상이 되는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있다면 공제를 허용하더라도 회생채권자 등 상호간의 공평을 해하지 않고, 오히려 공제에 관한 회생채권자 등의 정당한 기대를 보호하는 한편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도 어려워 채무자회생법 제145조의 취지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공제하기로 약정한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없더라도 그 약정 자체는 유효하지만, 어느 일방에 대하여 채무자회생법에서 정한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라면 견련성이 없는 양 채권 사이의 공제를 제한없이 허용하여 채권자 상호간의 공평을 해하는 것은 강행규정인 채무자회생법 제145조의 취지를 잠탈하는 결과가 되므로, 그 약정은 더 이상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
다. 손해배상예정액을 약정한 채무자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손해배상예정액의 감액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이 고려하여야 할 요소
한편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채무자가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서,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증명곤란을 배제하고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여 법률관계를 간이하게 해결함과 함께 채무자에게 심리적으로 경고를 함으로써 채무이행을 확보하려는 데에 그 기능이나 목적이 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러한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은 국가가 당사자 사이의 실질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계약의 체결 또는 그 내용에 간섭하는, 사적 자치의 원칙에 대한 제한의 한 가지 형태이다. 법원은 위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지 여부와 그에 대한 적당한 감액의 범위를 판단할 때 사실심의 변론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그 사이에 발생한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다209347 판결,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다209347 판결 등 참조). 이때 손해배상예정을 약정한 채무자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되었다면, 손해배상예정액의 감액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으로서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경제적 지위, 계약의 목적, 손해배상액 예정의 경위와 거래관행 뿐 아니라, 기록상 알 수 있는 채권자의 실제 손해액 또는 예상 손해액의 크기와 이에 대한 손해배상예정액의 비율을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손해배상예정을 약정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다른 회생채권자들 사이의 공평을 해하지 않고 그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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