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고등법원 2020. 8. 19. 선고 2019노415 판결
1.
사건의 개요
부자 간인 피고인 1(아들), 2(아버지)는 공모하여, 의료인이 아님에도 의료법인 □□의료재단(이하 ‘이 사건 의료법인’이라 한다)을 설립하여 순차로 이사장이 되어 2010. 10.
7.경부터
2018. 7. 31.경까지 의료기관인 ○○병원(이하 ‘이 사건 병원’이라 한다)을 개설․운영하였고(의료법위반), 의료법을 위반하여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 등을 청구할 수 없음에도 위와 같이 개설한 이 사건 병원을 통해 환자를 진료하고 2010. 11.경부터 2018. 7. 31.경까지 피해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92회에 걸쳐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22,449,865,430원 상당을 지급받고, 같은 기간 동안 피해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지급권한을 위탁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93회에 걸쳐 의료급여비 명목으로 3,084,549,480원 상당을 지급받아 편취하였다[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었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설립하여 의료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행위가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비의료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비의료인에 대한 의료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된 경우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의료법인의 설립과 의료기관의 개설 과정,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법률이나 정관에 규정된 의사결정 절차를 밟지 않고 전적으로 비의료인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등으로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자기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었는지, 법인이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없거나 비의료인의 담보물권 등 설정으로 법인의 자본이 부실해졌는지, 의료기관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는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에 대한 투자의 대가로서 그 수익을 분배받았는지, 비의료인과 의료법인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는지, 의료기관의 규모 및 직원의 수는 어떠한지 등의 제반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른바 사무장병원으로 판단될 여지가 한층 더 커진다고 할 것이지만, 반대로 어느 한 측면이 충족된다고 하여 사무장병원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비의료인인 피고인들이 의료법인을 설립하여 지배하면서 그 의료법인 명의로 병원을 개설․운영한 행위가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의하여 금지되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안입니다.
3.
적용법리
가. 관련 법리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기타 비영리법인 등이 아닌 자의 의료기관 개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의료전문성을 가진 의료인이나 공적인 성격을 가진 자로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건전한 의료질서를 확립하고, 영리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국민 건강상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위 의료법 조항이 금지하는 의료기관 개설행위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14. 9. 25. 선고 2014도7217 판결,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09도2629 판결 등 참조).
의료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인(비의료인)이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여 시설을 갖추고 유자격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한 행위는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의 개설로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으로서 의료법 제33조 제2항 본문에 위반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러한 법리는 법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가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2도14360 판결 참조).
나. 의료법인에 의해 개설된 병원이 사무장병원인지 여부의 판단기준
의료법 등 관련 법규에서는 의료법인의 임원 자격을 의료인으로만 제한하거나,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법인을 통한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하여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임원이라는 합법적인 지위를 허울로 의료법인을 앞세워 실제로는 자신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탈법적인 행태까지 용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 여부의 판단에서 비의료인의 주도 여부를 그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위 대법원 2014도7217 판결, 2009도2629 판결 등), 생협 명의의 사무장병원이 문제된 사안에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생협의 보건·의료사업을 허용하면서 의료법 등 관계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되도록 한 것은, 보건·의료사업이 생협의 목적달성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그 사업수행에 저촉되는 관계 법률의 적용을 선별적으로 제한하여 생협의 정당한 보건·의료사업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뿐, 생협을 의료법에 의하여 금지된 비의료인의 보건·의료사업을 하기 위한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와 같이 형식적으로만 생협의 보건·의료사업으로 가장한 경우에까지 관계 법률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명확하게 판시하고 있는데(위 대법원 2012도14360 판결), 마찬가지로 의료법인 명의의 사무장병원이 문제되는 사안에서도 의료법인이 생협과 동일한 방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4.
법원의 판단
가. 원심과 당심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개설하는 것처럼 외관을 가장한 뒤 실질적으로는 사익을 위하여 자신들의 개인 의료기관을 운영할 목적으로 이 사건 의료법인을 설립하여 이 사건 병원을 운영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① 피고인
2는
2007. 7.경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라 ○○○생협을 설립한 후 2007. 7.
26.경부터
2009. 6. 28.경까지 ‘○○의원’을, 2009. 8. 7.경부터 2011. 7. 28.경까지 ‘○○한의원’을 각 운영하였다. 그로 인해 피고인은 의료인이 아니면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고, 이를 근거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등 명목으로 금원을 교부받아 편취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어 2016. 10. 6.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의원에서 의사 이△△(1938년 생)이 고용의사로, 피고인 1이 원무과장으로 각 근무하였다.
② 이 사건 병원은 ○○○생협이 ○○의원을 폐업한 직후인 2009. 6. 29. ○○의원 소속 의료진과 영업재산 등을 승계하여 개설하였다.
③ ○○○생협은
2009. 7. 6. 의사 이△△에게 이 사건 병원을 양도대금의 현실 지급 없이 양도하였다. 당시 병원 규모는 입원실 병상 106개에, 의사 이△△ 포함 2명, 한의사 1명, 간호사 7명의 의료진을 갖추고,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등 7개를 진료과목으로 두었다. 그런데 ㉮ 2009. 7. 6.자 양도양수계약서의 내용에서 양도양수대금(피고인들은 4억원이라고 주장함)의 구체적인 지급 시기나 방법에 대해서 아무런 약정이 없는 점, ㉯ 피고인들이 의사 이△△에게 이 사건 병원을 양도한 이후 위 병원을 서울 소재 의료법인의 부산 지소 이름으로 운영하려고 서울 소재 의료법인 측과 접촉하고 다액의 사례비(내지 계약금)까지 지급한 정황이 있는 점, ㉰ 당시 이 사건 병원에서 근무하였던 의사, 한의사가 피고인들이 병원장인 의사 이△△을 제쳐두고 병원의 운영과 심지어 환자진료에까지 개입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점, ㉱ 의사 이△△ 명의의 요양급여비 수취계좌와 피고인들 명의의 은행계좌 사이에서 의심스러운 거래 내역이 많은데도, 피고인들이 그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하는 점, ㉲ 의사 이△△은 이 사건 병원 운영 1년 남짓 만에 이를 또다시 이 사건 의료법인에 양도한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이 이 사건 병원을 지배하였다고 볼 수 있다.
④ 피고인
2는
2010. 3.경 이 사건 병원이 입주한 상가점포 4개 호실을 공매로 취득한 후 2010. 8.경 이를 기본재산으로 출연하고, 피고인들의 지인들을 모아 이사, 감사로 선임하는 등의 설립발기인 대회를 마친 후 이 사건 의료법인을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⑤ 이 사건 의료법인은 2010. 10.경 의사 이△△으로부터 이 사건 병원을 대금의 현실 지급 없이 양수하여 2018. 7.경 수사기관에 단속될 때까지 이를 운영하여 왔다(그 도중인 2016. 4. 1.경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이사장 직위를 물려받았다). 단속 당시 병원 규모는 입원실 병상 165개에, 의사 3명, 한의사 2명, 간호사 20명, 진료과목 13개로 개원 무렵보다 확충되었다.
⑥ 결국,
이 사건 병원은 이 사건 의료법인에 의해서 인수되기 전 ○○○생협과 의사 이△△의 명의로 운영되던 당시부터 실상은 사무장병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⑦ 그리고 이 사건 의료법인이 인수한 2010. 10.경 이후로도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 이 사건 의료법인 임원진의 구성과 활동이 그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사장 등인 피고인들이 결정하고 이사회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이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 피고인들이 이 사건 병원을 운영함에 있어서 병원 업무 전반에 대하여 전권을 가지고 의사결정과 집행행위를 주도하였던 점, ㉰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이 급여 또는 기타의 방식으로 향유한 경제적 이익이 너무 커서 피고인 2가 이 사건 의료법인의 설립 과정에서 출연한 재산에 대한 대가로 병원 운영 수익을 분배받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점, ㉱ 이 사건 의료법인의 재정 및 회계처리가 피고인 2의 개인재산과 혼재되어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 사건 병원은 사무장병원이라고 판단된다.
나. 결국, 피고인들에 대한 의료법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의 공소사실을 전부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의료법이 금지하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으므로 파기되어야 하고, 이 법원의 새로운 판단에 따라 이 사건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여 피고인들을 각 징역 3년에 처한다(다만,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법정구속은 하지 아니함).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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