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9. 7.
11. 선고 2016다224626 판결
1.
판결의 요지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에 해당하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서 특정금전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원고가 피고에게 특정 신용등급 이상의 기업어음만 신탁재산에 편입하도록 지시한 경우에 피고가 甲 회사 발행의 기업어음을 매수하여 신탁재산에 편입한 행위를 두고, 편입 당시 해당 기업어음의 신용등급 판단, 피고의 위와 같은 행위가 신탁업자로서의 선관주의의무 등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다투어졌는데, 위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은 원고의 지시 범위 내인 A2 등급이고, 수익자인 원고가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라는 이유만으로는 신탁업자인 피고가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의 수준이 완화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특정금전신탁에서 수탁자가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피고의 의무위반이 없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단이 결과적으로 정당하다고 하여 원고의 상고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입니다.
2.
관련 법리 -
특정금전신탁에서 신탁업자가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 등의 내용 및 위탁자가 전문투자자인 경우 위탁자가 일반투자자인 경우보다 그 의무의 정도가 완화되는지 여부(소극)
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라고 한다)은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전문성 구비 여부, 소유자산 규모, 투자에 따른 위험감수능력 등을 기준으로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를 구분하고 있다(제9조 제5항, 제6항). 특정금전신탁을 포함한 금융투자업 일반에 관하여는 자본시장법 제2편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중 영업행위 규칙을 정한 제4장은 공통 영업행위 규칙을 정한 제1절과 금융투자업자별 영업행위 규칙을 정한 제2절로 구분된다. 공통 영업행위 규칙 중 제2관은 “투자권유 등”이라는 제목 하에 금융투자업자에 대하여, 일반투자자를 상대로 투자권유를 하는 경우의 적합성 원칙(제46조), 적정성 원칙(제46조의2), 설명의무(제47조)를 규정하는 등 투자권유 단계에서 일반투자자의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 사이에 금융투자계약을 체결할 때 필요한 지식과 경험, 능력 등 그 속성에 차이가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나. 신탁업자의 영업행위 규칙을 다루고 있는 자본시장법 제102조에서는 공통 영업행위 규칙에서의 적합성 원칙 등과 달리, 금융투자업자로서의 신탁업자가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에 관하여 수익자가 전문투자자인지 일반투자자인지 구별하지 않고, 신탁업자는 수익자에 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신탁재산을 운용하여야 하고 수익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금전신탁의 신탁업자가 계약 체결 이후 투자자의 재산을 관리․운용하는 단계에서 수익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의 정도는 수익자가 전문투자자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기 어렵다.
다. 특정금전신탁은 위탁자가 신탁재산의 운용방법을 특정하는 금전신탁으로서, 수탁자는 위탁자가 지정한 방법대로 자산을 운용하여야 하고, 그러한 운용의 결과 수익률의 변동에 따른 위험은 수탁자인 신탁업자가 신탁재산에 대하여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익자가 부담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5다64552 판결, 대법원 2018. 2. 28. 선고 2013다26425 판결 등 참조). 이러한 특정금전신탁의 특성에 비추어 보면, 특정금전신탁의 신탁업자가 위탁자가 지시한 바에 따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신탁재산의 최상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신탁재산을 관리․운용하였다면 신탁업자는 위 법 규정에 따른 선관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할 것이고, 설사 그 예측이 빗나가 신탁재산에 손실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3. 7. 11. 선고 2001다11802 판결,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96130 판결 등 참조).
3.
사실관계
가. 원심은, 원고가 2012. 2. 16. 피고와 사이에 원고가 피고에게 500억 원을 신탁하고 피고는 원고의 지시에 따라 이를 운용하는 대신 보수를 지급받기로 하는 이 사건 특정금전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업어음은 신용평가등급이 A2 등급 이상인 것만 신탁재산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지정한 ‘특정금전신탁 운용지시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였고, 운용방법의 변경을 요구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피고와 협의를 한 후 ‘특정금전신탁 운용지시 변경신청서’에 의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런 다음 원심은, 피고가 2012. 10. 15. STX팬오션 주식회사(이하 ‘STX팬오션’이라고 한다) 발행의 이 사건 기업어음(액면금 50억 원 상당)을 아이엠투자증권 주식회사로부터 4,755,890,411원에 매수하여 원고의 신탁재산에 편입하였는데, 피고의 매수 이전에 원고가 합의된 지시변경 방식에 의하여 매수 가능한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등급 기준을 변경한 바 없고, A1 등급 미만의 기업어음을 신탁재산에 편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지시는 원래의 ‘특정금전신탁 운용지시서’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경하는 것이므로 구두로 이와 같은 취지의 지시를 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이어서 이 사건 기업어음이 원고의 신탁재산에 편입될 당시의 신용평가등급은 A2라고 판단한 다음, 피고가 이 사건 기업어음을 매수하여 신탁재산에 편입시킨 것 자체가 원고
의 운용지시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와 피고는 모두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업자이다.
(2)
피고가
2012. 10. 15.에 매수하여 원고 신탁재산에 편입한 이 사건 기업어음은 원래 원고 신탁재산에 편입되어 있다가 2012. 6. 11. 편출된 것으로, 편출 당시의 이 사건 기업어음 신용평가등급은 A2- 등급이었지만, 2012. 10. 15. 당시의 이 사건 기업어음 신용평가등급은 A2 등급이었다.
(3)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는 평가대상기업의 의뢰와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정기평가와 그 사이에 신용평가회사가 피평가회사를 계속 모니터링하여 기존에 공시된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상황변화가 발생할 경우에 실시하는 수시평가로 나눌 수 있는데, 양자 모두 신용평가등급의 유효기간 내에 한하여 이루어진다. 국내의 주요 신용평가회사인 한국기업평가 주식회사(이하 ‘한국기업평가’라고 한다), 나이스신용평가 주식회사(이하 ‘나이스신용평가’라고 한다), 한국신용평가 주식회사(이하 ‘한국신용평가’라고 한다) 모두 기업어음 신용평가등급의 유효기간을 평가기준이 되는 사업연도 결산 재무제표 기준일로부터 1년 6개월까지로 정하고 있고, 피고와 같은 전문금융투자업자는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2012.
10. 15.을 전후하여 계속 이 사건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를 하여 온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2012. 4.경 이 사건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등급을 A2 등급이라고 평가한 이후에 2012. 12. 말의 정기평가를 통해 그 등급을 A3+ 등급이라고 평가하였을 뿐, 그 사이에 이 사건 기업어음에 관해 수시평가를 하지 않았다. 한편, 2012. 6. 11.에 유효하였던 A2- 등급은 한국신용평가가 2012. 6.경 수시평가를 한 결과인데, 2012. 6. 30. 그 유효기간이 만료되었고, 그 이후 한국신용평가가 이 사건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등급을 평가한 자료는 없다.
(4)
2012년 9월과 10월에 다수의 증권회사들이 STX팬오션의 영업전망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고, STX팬오션의 외부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도 적정 의견을 공시하였으며 위험요인에 대한 특별한 언급도 없었다. 2012. 7. 24. 공시된 STX팬오션의 사채투자설명서에도
2012년 1분기말을 기준으로 STX팬오션의 재무 위험요소가 낮다는 동양증권 주식회사의 종합평가의견이 기재되어 있다.
(5)
피고는 이 사건 기업어음을 매수하여 원고 신탁재산에만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그 무렵인 2012년 9월 말과 10월경에 수차례에 걸쳐 피고가 운용하는 여러 다른 투자자들의 신탁재산에도 이 사건 기업어음을 편입시켰다. 피고뿐 아니라 아이엠투자증권 주식회사와 케이티비투자증권 주식회사도 같은 시기에 수차례 이 사건 기업어음을 거래하였다. 당시 이 사건 기업어음의 수익률은 4.95%였다.
(6)
한편,
2013. 6.경 STX팬오션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되었고, 이후 회생계획이 인가됨에 따라 원고의 STX팬오션에 대한 채권이 일부 면제되는 등 그 권리가 변경되었다.
4.
법원의 판단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본다. 원심의 판단 중 피고가 이 사건 신탁계약에 따라 수탁자로서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의 수준이 일반투자자로부터 자금을 투자받는 경우보다 완화된다고 전제한 부분은 수탁자의 선관주의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사실관계와 이 사건 기록에 의해 알 수 있는 다음의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신탁업자로서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1)
피고가
2012. 6. 11.에 이 사건 기업어음을 원고 신탁재산에서 편출한 것은 그 시점의 이 사건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등급이 A2- 등급으로서 원고의 지시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2012. 10. 15.에는 이 사건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등급이 A2 등급으로 원고의 지시범위 내에 있었고, 수익률도 동급의 다른 기업어음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2)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가
2012. 4.경 이 사건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등급을 A2 등급이라고 평가한 다음 2012. 12. 말의 정기평가 때까지 별도의 수시평가를 하지 않은 것은, 그 사이에 A2 등급이라고 본 기존의 평가내용을 바꿀 정도의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다고 보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달리 한국신용평가가 2012. 6.에 A2- 등급이라고 평가한 수시평가는 2012. 6. 30.에 유효기간이 만료되었고 그 이후에 한국신용평가가 이 사건 기업어음의 신용평가등급을 평가한 자료는 없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2012. 10. 15.의 시점에서 위 수시평가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3)
2012년 9월과 10월 당시 이 사건 기업어음 발행회사인 STX팬오션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긍정적이었고, 이 사건 기업어음의 투자손실이 당연히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없었다.
(4)
그렇다면 피고가 2012. 10. 15.에 이 사건 기업어음을 매수하여 원고 신탁재산에 편입한 것은 A2등급 이상의 기업어음만 신탁재산에 편입하라는 원고의 지시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고, 또한 당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원고 신탁재산의 최상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 하에 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이 사건 기업어음 발행회사인 STX팬오션에 대하여 회생계획이 인가됨에 따라 원고의 채권이 일부 면제되는 등 신탁재산에 손실이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을 들어,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신탁업자로서의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고, 이 부분 상고이유의 주장은 결국 이유 없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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