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6다221429 판결
1.
판결의 요지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 의사해석의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계약서에 나타난 ‘연체이자’라는 문언에도 불구하고 채권자들 사이에 체결된 이 사건 회수금 충당순서에 관한 약정은, ① 약정 당시 이미 채무자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있었던 점, ② 약정 당사자들은 모두 기업 회생절차에 관한 전문지식이 있는 자로서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회생계획이 인가되거나 회생절차가 폐지되는 두 가지 경우만이 가능하고, 만일 회생계획이 인가된다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 함) 제252조 제1항에 따라 채무자에 대한 채권 내용이 실체적으로 변경됨을 잘 알고 있는 점, ③ 채권자들이 채무자에 대한 권리 행사와는 상관없이 채권자들 사이에서만 회생계획에 따라 변경되기 전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약정은 사적 자치의 원칙, 특히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허용되지만, 채권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약정이 체결되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채무자회생법 제252조 제1항에서 정한 권리변경 효력을 배제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당사자의 의사가 분명하게 표시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그와 같은 특별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는 점 등 당사자들이 이 사건 약정을 한 동기와 경위, 약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들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채무자에 대한 회생계획이 인가된 이상 회생계획 내용을 반영하여 이 사건 약정의 ‘연체이자’를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보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법원 판결입니다.
2.
법원의 판단
가.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19776, 19783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에 따르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1)
대동판넬 주식회사(이하 ‘대동판넬’이라 한다)는 2002. 3. 20. 주식회사 하나은행(상호변경 전 주식회사 서울은행, 이하 ‘하나은행’이라 한다)에 대동판넬 소유의 부동산에 관해 채권최고액 4,550,000,000원인 이 사건 근저당권을 설정한 다음 하나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대동판넬은 2006. 9. 26.경 원고와 두 차례에 걸쳐 신용보증약정을 하고 원고로부터 보증금액 480,000,000원과 160,000,000원인 신용보증서를 발급받아 하나은행에 담보로 제공하였다.
(2)
대동판넬이 하나은행에 대한 대출금채무 등을 변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2009. 10. 26. 대동판넬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되었다.
(3)
원고는
2009. 12. 24. 하나은행에 신용보증약정에 따라 대동판넬의 대출금채무 중
654,496,000원을 변제하고, 하나은행으로부터 이 사건 근저당권 일부를 이전받는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이하 ‘이 사건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계약서 제2조 제1항에서는 근저당권이 실행될 경우 배당금 충당순서를 정하고 있는데, ‘1. 양도인(채권자)의 보증부대출을 제외한 배당일 현재 잔존채권(보증비율에 의한 대출예정금액을 초과하여 실행된 대출금 관련 미수채권 포함)’을 1순위로 충당하고, ‘2. 보증부대출의 보증채무이행일까지 발생한 연체이자와 약정이자 차액분’을 2순위로 충당하도록 정하고 있다(이하 순서대로 ‘1호 약정’, ‘2호 약정’이라 한다).
(4)
하나은행은
2010. 3. 4.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합자산관리 주식회사에 대동판넬에 대한 대출금채권과 근저당권 관련 권리 일체를 양도하였고, 피고는 2010. 3. 30. 연합자산관리 주식회사의 양수인 지위를 인수하였다.
(5)
대동판넬에 대한 회생절차에서 2011. 8. 8. 회생계획이 인가되었는데, 그 계획에는 원고와 피고의 채권은 회생담보권으로서, ① 시인된 원금 전부는 2012년 말까지, ② 개시전이자 전부는 2011년 말까지, ③ 개시후이자는 연 7.5%의 이율에 따라 지급하되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발생한 개시후이자는 2011년 말까지, 그 이후 발생한 개시후이자는 매 발생연도 말에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다.
(6)
이 사건 근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에 관하여 공매절차가 진행되어 2013. 10. 16. 부동산이 매각되었고, 한국자산관리공사는
2013. 11. 13. 매각대금과 예치이자 합계액에서 선순위 체납비 등을 공제한 이 사건 배분금 2,645,771,310원 전액을 피고에게 배분하는 내용의 배분계산서를 작성하였다.
다. 원심은 위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2호 약정에서 2순위로 충당될 채권으로 정한 ’보증채무이행일까지 발생한 연체이자와 약정이자 차액분’이 계약 당시 이미 발생하여 확정되어 있던 연체이자와 약정이자의 차액을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라. 그러나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원고와 피고가 2호 약정을 하게 된 동기와 경위, 약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들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대동판넬에 대한 회생계획이 인가된 이상 회생계획 내용을 반영하여 2호 약정의 ‘연체이자’를 해석함이 타당하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원고와 하나은행은 2호 약정에서 “보증부대출의 보증채무이행일까지 발생한 연체이자와 약정이자의 차액”이라고 기재하였다. 여기서 ‘보증부대출’과 ‘약정이자’의 의미에 관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보증채무이행일’로 이자발생의 종기도 특정되었으므로, ‘연체이자’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2)
일반적으로 금융기관 사이에서 ‘연체이자’는 금융기관의 연체이율을 적용하여 산정된 지연손해금을 가리킨다. 2호 약정의 ‘연체이자’ 역시 단어의 의미만을 본다면 이와 같이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이 체결된 다음과 같은 사정은 위 약정의 의미를 확정하는 데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은 원고가 대동판넬의 하나은행에 대한 대출금채무 중 일부만을 보증하고 이를 대위변제함에 따라 원고와 하나은행이 대동판넬 소유 부동산에 설정된 근저당권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원고와 하나은행 사이에서 향후 근저당권이 실행될 경우 충당될 채권의 순위를 정하고자 체결되었다. 그런데 위 계약이 체결된 때는 채무자 대동판넬에 대하여 이미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 한다)에 따른 회생절차가 개시된 이후였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회생계획이 인가되거나 회생절차가 폐지되는 두 가지 경우만이 가능하고, 만일 회생계획이 인가된다면 채무자회생법 제252조 제1항에 따라 원고와 하나은행의 대동판넬에 대한 채권 내용이 실체적으로 변경된다. 원고와 하나은행은 모두 기업 회생절차에 관한 전문지식이 있는 신용보증기관과 금융기관으로서 위와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2호 약정의 ‘연체이자’의 의미를 해석할 때에는 단지 그 문언만이 아니라,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이 체결된 동기와 경위, 이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
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3)
원고와 하나은행이 2호 약정의 ‘연체이자’를 원래 하나은행의 연체이율에 따른 지연손해금으로 보고 위와 같이 약정한 것이라면,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 당시 원래의 연체이자와 약정이자의 차액이 얼마인지를 계산할 수 있으므로, 이를 충분히 특정하여 기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고와 하나은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같은 계약서 제1조에서 원고의 대위변제금 액수를 ‘654,496,000원’이라고 특정하여 기재한 것과 대조된다.
원고와 하나은행은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을 체결한 시점이 이미 대동판넬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된 이후였기 때문에, 향후 대동판넬에 대한 회생계획이 인가될 경우 연체이율 등 원고와 하나은행의 채권 내용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거나, 적어도 향후 회생계획이 인가될 경우 발생할 권리변경 효력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사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4)
만일 2호 약정에서 정한 ‘연체이자’가 원래의 하나은행 연체이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지연손해금의 의미라면, 피고는 2호 약정에 따라 원고에 대하여 그에 해당하는 돈을 이 사건 배분금에서 우선하여 회수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고, 원고는 이 사건 배분금에 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드는 불이익을 입는다. 채권자들이 채무자에 대한 권리 행사와는 상관없이 채권자들 사이에서만 회생계획에 따라 변경되기 전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약정은 사적 자치의 원칙, 특히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허용된다. 즉, 약정의 일방 당사자인 원고가 스스로 불이익을 감수하고 약정 상대방인 피고로 하여금 담보목적물의 매각대금에서 회생계획에서 정한 권리 이상을 우선 충당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채권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약정이 체결되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채무자회생법 제252조 제1항에서 정한 권리변경 효력을 배제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당사자의 의사가 분명하게 표시되어야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그와 같은 특별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
(5)
요컨대, 당사자들이 2호 약정을 한 동기와 경위, 약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들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계약 당사자들은 대동판넬에 대한 회생계획이 인가될 경우 회생계획 내용을 반영하여 2호 약정의 ‘연체이자’를 해석하겠다는 의사로 2호 약정을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러한 해석이 같은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에서 이루어진 1호 약정에 관하여 대동판넬에 대한 회생계획을 반영하여 해석하는 것과도 조화를 이룬다.
마. 그런데도 원심이 2호 약정의 ‘연체이자’를 근저당권 일부이전계약 당시 이미 발생하여 확정되어 있던 연체이자라고 판단한 것에는 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원고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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