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2019. 3. 14. 선고 2017구단67646 판결
1.
판결의 개요
원고는 2009. 5..부터 2014. 3.까지 폴리에틸렌 피복강관 제조업체에서 내면도장, 외면쇼트 작업 등을 수행하였는데, 2014. 3. 급성 골수모세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피고(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원고의 질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였고 이에 원고는 요양불승인 처분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법원은 벤젠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병원인물질이라는 점은 의학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고, 원고가 작업시 사용하던 시너 등의 유기용제에는 벤젠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원고의 사업장에 환기시설 및 보호장구가 제대로 갖추어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원고가 벤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하였고, 원고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질병이 발생하였고, 질병과 관련된 병력, 가족력이 없는 한편, 건강검진 과정에서 별다른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벤젠에 노출되어 왔고, 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였거나 자연경과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질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19**. **. **. 출생한 남성이다.
나. 원고는 폴리에틸렌 . 2009. 5. 18. 피복강관 제조업체인 주식회사 ▲▲▲에 입사하여 2011. 12.경까지 가공2반에 근무하면서 내면도장 및 링조인트 작업 등을 수행하였고, 2012. 1.경부터 2014. 3.경까지 중구경반에 근무하면서 외면쇼트 전처리 작업 등을 수행하였다(다만, 2013. 5. 7.부터 2013. 8. 31.까지 및 2013. 10. 22.부터 2013. 12. 17.까지는 이 사건과는 무관한 다른 업무상 재해로 인하여 요양을 하였다).
다. 원고는 2014. 초경 피로감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2014. 3. 5. 위 병원에서 ‘기타 상세불명의 급성 골수모세포성 백혈병(AML, acute myeloid
leukemia)’(이하 ‘이 사건 질병’이라 한다) 진단을 받았다.
라. 원고는 2014. 11. 24. 피고에게 이 사건 질병에 대한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16. 9. 21. 이 사건 질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마.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불복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 청구를 하였으나, 위 위원회는 2017. 4. 13. 피고의 이 사건 처분 사유와 같은 이유로 원고
의 재심사 청구를 기각하였다.
바. 원고는 2017. 7. 27.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사.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이■■ 작성의 업무 관련성 평가서 (2014. 6. 18. 작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2016. 5. 19.자), ▩▩병원 직업환경의학과(산업의학과) 감정의 송■■(이하 ‘법원 감정의’라 한다)의 진료기록 감정서 (이 법원의 ▩▩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등 제출됨.
3.
법원의 판단
가.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한편,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두1066 판결 참조).
나. 판단
살피건대,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주식회사 ▲▲▲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벤젠에 노출되어 왔고, 이로 인하여 이 사건 질병이 발생하였거나, 자연경과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의 이 사건 질병 발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법원 감정의는 벤젠 이외에 주식회사 ▲▲▲의 사업장에서 사용되었던 다른 여러 화학물질들은 이 사건 질병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이 없고, 과로와 이 사건 질병 발생 사이에도 연관성이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히고 있으므로, 이하에서는 벤젠 노출과 이 사건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원고는
2009. 5. 18. 입사한 뒤 2011. 12.경까지 내면도장 및 링조인트 작업 등을 수행하였는데, 내면도장 작업에는 시너(thinner) 등의 유기용제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이■■ 작성의 업무 관련성 평가서에 의하면, 과거 국내에서 사용된 희석제는 톨루엔(Toluene)과 크실렌(자일렌, Xylene)을 주요 성분으로 하여 제조되었으나 , 벤젠이 불순물로 포함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하므로, 원고가 사용한 유기용제에도 벤젠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원고는 2012. 1.경부터 2014. 3.경까지는 외면쇼트 전처리 작업 등을 수행하였으나, 원고가 작업을 하였던 장소가 도장 작업이 완료된 제품을 적재하여 둔 장소와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위 시기에도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유기용제에 포함되어 있던 벤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위 의사 이■■은 업무 관련성 평가서에서 폴리에틸렌은 원유 정제 과정으로부터 제조되는 물질로 고열이 가해질 경우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이 포함된 탄화수소류의 가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2)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는 벤젠을 Group 1 인체발암물질(Carcinogenic to
humans)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벤젠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병원인물질이라는 점은 의학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3)
주식회사 ▲▲▲의 2009년 상반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이 사건 질병과 관련이 있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노출량이 측정되어 있지 않다(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에 대한 노출량의 측정이 실시되었으나 검출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측정 자체가 실시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역학조사를 실시하면서 당시 주식회사 ▲▲▲의 사업장에서 원고와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에 대한 노출평가를 실시하였는데, 전체 시료에서 벤젠,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 연구원도 . 역학조사 결과에서 밝히고 있듯이 위 노출평가는 주식회사 ▲▲▲의 사업장이 원고가 근무하던 ▼▼공장에서 ◈◈공장으로 이전한 지 약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공장을 대상으로 실시되었고, ◈◈공장의 근무환경, 공정의 내용 등이 원고가 근무하던 ▼▼공장에서의 근무환경, 공정의 내용 등과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위 역학조사 결과에 의하면, 역학조사 당시 ◈◈공장은 가스관 생산 허가를 받지 못해 가스관 생산라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파이프 적재 장소가 대부분 건물 밖에 위치하고 있는 등 ▼▼공장과 모든 조건이 동일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위 노출평가에서 벤젠,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원고가 위 물질들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4)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원고가 사용한 시너 등의 유기용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특정하지 못한 채 2003년 이후 사용된 시너의 벤젠 함유량 최대값이 1.66%로 확인된다는 전제 하에, 원고의 과거 벤젠 누적 노출량을 산출하였다. 또한 위 연구원은 원고가 내면도장 작업을 수행하였던 2009. 5. 18.부터 2011. 12.경까지의 약 2년 6개월의 기간만을 벤젠에 노출되었던 기간으로 전제하였고, 원고의 작업시간에 대한 정확한 확인 없이 ‘일 평균 약 10시간을 근무하였으나, 전체 작업시간의 약 60%는 내면도장 작업을 수행하고, 약 40%는 다른 업무를 수행하였다’는 원고 진술을 토대로 일 평균 벤젠 노출시간을 6시간으로 전제하였으나, 앞서 (1)항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가 2012. 1.경 이후의 기간에도 벤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내면도장 작업을 하는 동안에만 벤젠에 노출되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므로, 위와 같은 전제 하에 산출된 원고의 과거 벤젠 누적 노출량을 정확한 것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아니라 하더라도 위와 같은 가정 하에 산출된 원고의 과거 벤젠 누적 노출량은 인데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8.75ppm․yr
, 제37조 제5항,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2018. 12. 11. 대통령령 제293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4조 제3항, [별표 3]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 제10호 제차목에서 정하고 있는 벤젠 누적 노출량(노출기간이 10년 미만인 경우)의 기준치인 10ppm․yr에 비교적 근접한 수치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위 [별표 3] 제13호에서는 “제1호부터 제12호까지에서 규정된 발병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거나, 제1호부터 제12호까지에서 규정된 질병이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질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별표 3] 제10호 제차목에서 정하고 있는 벤젠 누적 노출량이 이 사건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고 볼 수도 없다(법원 감정의는 진료기록감정서에서
‘0.5~1ppm․yr에 해당하는 낮은 노출 수준에서도 조혈계 암의 위험을 높인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5)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주식회사 ▲▲▲의 사업장에는 쇼트 설비에 집진기가 있었을 뿐 그 밖에 특별한 환기설비가 없었고, 방진마스크, 귀마개, 면장갑이 지급되었으나, 방독마스크는 도장, 피복 관련 업무를 하는 근로자에게만 지급되었으며 그조차 착용이 미흡하였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원고는 이와 같이 환기시설 및 보호장구가 제대로 갖추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면도장 작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작업 과정에서도 벤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6)
원고는 만 **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 사건 질병이 발생하였다. 원고에게는 이 사건 질병과 관련된 병력, 가족력이 없었고, 2013년까지의 건강검진에서는 별다른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원고 개인에게 이 사건 질병 발생에 관한 특별한 위험 인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7)
원고에 대한 업무 관련성 평가서를 작성한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이■■과 법원 감정의는 모두 원고가 주식회사 ▲▲▲
▼▼공장에 근무하면서 하였던 작업 과정에서 벤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와 같은 노출과 이 사건 질병의 발생 사이에 연관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히고 있다.
다. 소결론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고의 요양급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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