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12. 6. 선고 2011가합45458 판결
1. 배경기술 및 사실관계
A회사와 B회사는 반도체 제조장비 전문 기업인데, A회사의 시스템제어연구부 직원인 C(레이저 제어 및 가공 소프트웨어 개발)), D(사용자 인터페이스(MMI) 개발), E(모터, 센서, 및 시퀀스 제어기술 담당), F(레이저 가공기술개발 및 테스트, 가공 피라미터 추출 업무)가 경쟁사 B로 이직하였습니다.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는 2차원만을 고려한 집적도의 한계로 인하여 3차원적 집적을 고려해야 하는바, 소형화를 위한 PoP(Package on Package) 기술이 중요하게 됩니다. 반도체 소자와 기판 사이에는 절연을 위한 부도체(EMC: Epoxy Mold Compound)가 채워지는데, 이에 EMC를 관통하여 Solder Ball(반도체 소자와 기판을 전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반도체 소자에 형성된 납구슬)까지 통로를 형성하는 TMV(Through Mold Via) 레이저 드릴링 기술(TMV 기술)이 필요합니다. A회사는 2008. 1.경부터 관련 기술을 개발하여 2009. 2.경 TMV 장비를 생산하여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TMV기술이 구현된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는 A회사, B회사, H회사 등 3개 회사뿐입니다. A회사는 TMV 장비 제조를 위해 시퀀스 프로그램 기술, MMI 프로그램 기술, DB 기술, SECS/GEM 통신프로그램 기술, 레이저 제어 및 가공 기술 등(A회사 보유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A회사에서는 위 보유 기술을 비밀로 관리하여 허가된 직원들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A회사의 직원이었던 C, D, E, F는 재직 시에 A회사의 영업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비밀유지약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C는 A회사에 재직중이던 2009. 3. 초순경 회사 업무용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기술정보 문서파일, 구현된 소스 프로그램, 실행파일 등 401개 파일을 개인용 컴퓨터에 복사하였다가, B회사로 이직한 후에 B회사의 업무용 컴퓨터에 복사하였습니다. D, E, F는 B회사로 이직한 후에 C로부터 위 파일 중에 일부를 제공받아 자신들의 업무용 컴퓨터 등에 복사하였습니다. B회사 및 C 내지 F는 위 파일 중 일부인 85개 파일을 B회사 장비를 제조하는 데에 사용하고 사내 교육용 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쟁점들 가운데 소스코드 등 파일의 영업비밀성과 관련된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 피고측 주장 및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봅니다. 경쟁사로 이직한 엔지니어들 및 B회사는 유출된 s/w의 영업비밀성을 다투는 다양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영업비밀성을 인정하고, B회사에 40여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손해배상명령을 내렸습니다.
2. 피고주장 및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
가. 피고들은 복사해간 파일 중 일부는 이미 공지된 소스를 이용한 것이어서 영업비밀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1) 공개된 소스코드가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공개된 소스코드를 수정, 조합하여 이용 목적에 맞게 구현하는 것도 기술력의 중요한 부분이고, 2) 공개되어 있다고 주장된 부분은 전체 프로그램 파일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3) 이 사건 파일이 프로그래머라면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볼 만한 자료도 없고, 4) 나아가 이 사건 프로그램 파일들은 각 파일이 독립하여 별개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장비 제어를 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파일들로서, 일부 파일들을 제외하는 경우 나머지만으로는 컴파일하여 실행파일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며, 한 파일에 화체된 정보는 다른 파일의 내용까지 모두 파악해야 비로소 완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 프로그램 파일들은 전체로서 하나의 기술 정보로 파악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나. 법원은 소스코드 없이 실행파일만 유출된 경우에 관하여도 설시하였습니다. 해당 파일은 기술협력계약에 따라 소외 C회사가 개발하여 원고 A회사에 제공한 파일로서, A회사와 C회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A회사는 C회사로부터 해당 파일의 기능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는바, 1) 소스코드의 내용만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파일이 특정 하드웨어나 기술력이 반영되어 작성된 것이라면 파일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에 관한 것 역시 영업비밀이 될 수 있다는 점, 2)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원래 소스코드 내용을 알아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3) 각 파일이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영업비밀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에 비추어 해당 파일을 영업비밀의 내용에서 제외할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다. 한편 피고측은 파일이 사용된 바 없다거나 또는 미완성 상태로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등도 주장하였는데, 법원은 정보 보유자가 정보를 통해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그 정보의 취득 또는 개발에 상당한 비용, 노력이 필요하여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미완성 상태라거나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다거나 또는 누구나 시제품만 있으면 실험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하더라도 영업비밀로 볼 수 있다고 한 대법원 판시사항(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에 따라, 피고측 주장을 모두 배척하였습니다.
3. 시사점
먼저 법원은 소스코드 없이 실행파일만 유출된 경우에도 실행파일 부분을 영업비밀의 내용에서 제외할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안의 경우처럼 프로그램 전체의 영업비밀성이 인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타당한 결론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이를 실행파일만 유출 또는 공개된 모든 경우에 확대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역설계에 의한 정보취득행위는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서, 실행파일 자체가 비밀로 유지되어 영업비밀로 관리되지 않았다면, 공개된 실행파일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분석하여 유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행위를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물론 저작권 침해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가능하다는 점과 영업비밀성이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입장이라는 점(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에서도 더욱 그렇습니다.
한편 법원은 각 파일이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영업비밀이라 판단하고 있는데, 비록 명시적으로 판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법원의 태도를, 공지된 정보와 비밀정보가 결합된 형태의 정보라 하더라도 전체로서 영업비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그 전체를 영업비밀로 인정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이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이른바 ETUND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06. 11. 1. 선고 2005노3002 판결)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ETUND 판결에서 법원은, 공지된 오픈소스를 개작한 프로그램(오픈소스 프로그램의 2차적 저작물)도 전체로서 영업비밀의 요건을 갖추면 영업비밀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의 판시사항에 따르면, 공지된 코드와 비공지 코드가 조합되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경우, 비공지 코드가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고, 공지된 코드와 비공지 코드의 조합 또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체 프로그램의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부정되어 그 영업비밀성 또한 부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경험이 있는 법률가의 전문적인 소송수행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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