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11. 16. 선고 2011가합71839, 2012가합31364 판결
1. 전략적 제휴관계
협력의무를 규정한 제휴협약에 따라 BT 업체와 IT 업체가 공동개발을 진행하여 제품이 완성된 뒤, 제품을 생산한 IT 업체가 공동개발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공동개발한 기술이 사용된 제품을 납품하여 문제가 된 사안입니다.
원고 A회사는 의료장비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로서, 인체 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omavirus, HPV)에 대한 진단키트와 관련된 특허의 특허권자입니다. 그리고 피고 B회사는 광디스크, 광픽업 등 기술을 보유한 업체로서, 바이오칩 스캐너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었던 회사입니다. A회사와 B회사는 HPV 진단 키트의 내용을 판독할 수 있는 전용 광스캐너를 공동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1) 전략적 제휴협약, 2) 비밀유지계약, 3) 제품공급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위 공동개발의 진행에 따라 B회사는 HPV 진단키트 전용 스캐너 시제품을 완성하여 A회사에 납품하였고, A회사는 B회사에서 제조한 스캐너 제품의 독점 판매권을 확보하기 위해 B회사와 독점 대리점 계약까지 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B회사가 스캐너를 공동개발한 A회사가 아닌 C회사에 C회사의 바이오칩을 판독할 수 있는 스캐너를 납품하였고, 이에 A회사는 저작권침해, 영업비밀침해, 비밀유지의무위반, 협력의무위반, 품질향상약정 위반 등을 이유로 B회사와 C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하에서는 이 판결의 여러 쟁점 가운데, 협력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한 부분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2. 전략적 제휴협약 체결
A회사와 B회사가 공동개발을 위해 체결한 “전략적 제휴협약”은, 양사간의 공동이익 추구, 영업 및 마케팅 관련 상호협조, 상품화 공동진행 등 규정을 두고 있었습니다.
[제1조 (전략적 제휴의 목적 및 내용)
본 협약의 주 목적은 피고 B회사와 원고 A회사간의 상호우호관계의 증진을 희망하며, 각 당사자의 이익을 고려하고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바이오칩스캐너 상업화를 위한 상호 유익한 장기적 협력을 추구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생명공학 분야, 특히 바이오 칩 분야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Bioinformatics의 핵심기술을 응용, 확장하여 발전시킴으로써 산업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A회사와 IT 기술인 광픽업, 광디스크 기술을 보유한 B회사는 기술적 제휴를 통해 제품개발을 가속화하고 나아가 IT 기술과 응용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제품(바이오칩 및 바이오칩스캐너)을 꾸준히 개발함으로써 양사가 정보화 사회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1) 양사는 IT 및 BT 또는 IT/융합 솔루션 관련 보유제품과 기술을 공유하고, 영업 및 마케팅 활동에 상호 협조한다.
3) B회사는 기획중인 신규사업 및 주요 연구과제 수행에 필요한 레이저 방식의 바이오칩스캐너 운영 S/W 등을 원고로부터 제공받으며, 향후 해당기술 부분을 적용한 제품의 상품화에 대한 기획, 개발 등을 공동 진행한다.
4) B회사와 A회사는 신기술을 이용하여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솔루션을 기획, 공동개발함은 물론 필요시 기 진행중인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상품화 기획 및 마케팅, 영업활동에 양사가 공동 참여하여 해당 분야별로 역할을 분담 진행한다.]
3. 협력의무 위반에 대한 법원의 판단
법원은 위 규정을 단순히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A회사와 B회사가 향후 바이오칩 스캐너 장비 및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과정에 있어 공동개발과 공동진행을 원칙으로 하고, 그 외의 경우에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서로 협력하고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할 의무를 규정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법원은 이에 따라, IT기업 B회사가 수년간 A회사를 통하여 판매한 수량으로는 회사를 유지하기 어렵다거나 향후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 불가피하게 다른 판매망을 개척하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A회사와 충분한 상의를 거쳐 A회사와의 협조관계를 통하여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부득이한 경우 A회사의 양해를 얻는 등의 노력을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으며, B회사는 이러한 제휴협약상 협력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A회사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만 B회사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은 C회사는 위 제휴협약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A회사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하여 C회사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4. 검토 및 시사점
법원은 B회사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A회사가 주장한 사항들 가운데 “협력의무 위반”만을 인정하고 나머지 주장은 배척하였습니다. 그런데 위 협력의무 규정은 구체적인 이행사항을 명시하지 않고 매우 추상적인 용어들로 구성되어 있어, 얼핏 보기에는 법적 구속력을 인정할 수 있을지, 인정한다면 그 범위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위와 같은 추상적인 규정을 근거로, B회사가 A회사를 통해 판매한 수량으로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다른 회사에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먼저 A회사와 협조하거나 A회사의 양해를 얻는 등 (금전적 보상도 포함)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의무를 이끌어내어, 이를 통해 B회사의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한 것입니다.
다만 재판부는, 1) 위 협력의무 규정의 취지에 따라, 지적재산권을 공동명의로 출원하거나 전용실시권 등을 최우선적으로 협상하고 협력개발 및 사업화와 관련하여 취득한 비밀의 공개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점, 2) A회사가 공동개발과정에서 B회사에 전달한 정보가 이 사건 스캐너 및 구동 소프트웨어 개발에 큰 도움이 된 점, 3) B회사는 이 사건 스캐너 공동개발을 진행하면서 스캐너를 A회사에 납품하여 얻은 이익 외에도 바이오칩 스캐너 장비 개발에 관한 많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위와 같이 판단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이 공동개발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공동개발계약이 제3자에 대한 판매금지의무를 명시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공동개발 당사자 외 다른 발주처에 공동개발의 결과물을 납품하는 경우 협력의무 위반이 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손해배상책임까지 부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협력의무는 대부분의 공동개발계약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결국 공동개발 성과가 포함된 제품을 제3자에게 납품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제휴협약 등 관련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그 구속적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또는 위에서 판시된 바와 같이 전략적 제휴관계에 합당한 조치를 취한 한 후 먼저 공동개발 상대방의 양해를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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