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2014. 12. 11. 선고 2014나1463 판결
1. 사실관계
가. 사안의 개요
이 사건은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 러프킨 지원이 2009. 10. 30. 선고한 판결에 기초하여 집행판결을 구하는 사안이다.
제1심판결은 미국 법원의 판결이 지나치게 과다한 손해배상액을 받아들였고, 피고가 우리나라 법인이며 미국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게 되면 피고가 파산할 우려가 있어 내국관련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미국 법원의 판결 중 일부(미화 9,109,278.5달러)에 대한 강제집행을 허용하고, 원고의 나머지 부분의 소를 각하하였으며, 이에 원고와 피고가 그 패소부분에 각각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다(원고는 이 법원에서 청구취지를 확장하였다).
나. 전제된 사실관계
(1)
당사자
(가) 원고는 지폐, 동전, 수표 등을 계수·분류·인증하는 기계의 제조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법인이다.
(나) 피고는 금융자동화기기 개발·제조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으로 2007. 3. 24. 지폐계수기 생산 및 판매업을 하던 ㈜신우아이티(이하, ‘㈜’는 생략한다)를 합병하였다.
(2)
외국법원의 확정판결
(가) 원고의 미국 특허권
원고는 지폐 계수 및 위조지폐 탐지의 방법 및 장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미국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이하, 원고의 미국 특허권을 통칭하여 ‘원고 특허권’이라 한다).
① (등록번호 1 생략) 특허 : 지폐에 인쇄된 표지의 광반사 특성을 사용하여 다양한 액면의 지폐를 자동식별하고, 계산하는 장치와 방법에 관한 특허(이하, ‘806특허’라 한다)
② (등록번호 2 생략) 특허 : 지폐 더미(stack)를 투입하여 신속하게 액면을 식별하고, 지폐의 진위를 판정하여 지폐를 재분류하는 장치와 방법에 관한 특허(이하, ‘456특허’라 한다)
③ (등록번호 3 생략) 특허 : 다양한 액면의 지폐를 식별하고, 진위를 판정하는 장치와 방법에 관한 특허(이하, ‘503특허’라 한다)
④ (등록번호 4 생략) 특허 : 다수 국가의 다양한 액면의 지폐와 같이 다양한 문서형식을 식별하는 장치와 방법에 관한 특허(이하, ‘354특허’라 한다)
(나) 피고의 행위
피고는 2003년 무렵부터 지폐계수기를 미국에 수출하여 판매하여 오다가 2004. 5. 19. 미국 법인인 암로-아시안 트레이드 인코포레이션(Amro-Asian Trade
Incorporation, 이하,
‘암로’라 한다)과 사이에 지폐계수기에 관한 판매계약을 체결하였고(다만 당시 계약당사자는 피고가 합병한 신우아이티였고, 그 후 신우아이티는 2005. 2. 28. 수정계약을 체결하고 2007. 7. 20. 다시 판매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부터는 암로가 피고로부터 피고가 생산한 지폐계수기를 수입하여 미국 내에서 판매하였다.
(다) 소송과정
① 원고는 2007. 9. 무렵 피고 및 암로를 상대로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 러프킨지원(United States
District Court for the Eastern District of Texas Lufkin Division, 이하, ‘미국 제1심법원’이라 한다)에 피고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지폐계수기{제품명 SB-1000(cf),
SB-1000(w/o cf), SB-1100 및
SB-1800, 이하, ‘피고 제품’이라 한다}가 원고 특허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특허침해에 따른 불법행위에 기초한 손해배상과 아울러 금지명령을 구하는 소{사건번호 : 07-씨브이(CV)-0196호, 이하, ‘미국 소송’이라 한다}를 제기하였다. 피고는 미국 로펌인 콘리 로즈(Conley Rose)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응소하면서 원고의 806, 456특허 침해 주장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다만 806, 456특허의 효력에 대해서는 다투었다).
② 미국 소송은 미국 제1심법원의 론 클락(Ron Clark) 판사가 담당하게 되었고, 론 클락 판사는 배심원을 선정하여 피고 제품이 원고의 503, 354특허를 침해하였는지 여부와 피고 제품이 원고 특허를 침해하였을 경우 피고와 암로가 원고에게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 등에 관하여 심리를 하게 하였는데, 배심원단은 2009. 10. 7. 피고 제품이 503특허의 제15청구항와 354특허의 제55청구항를 침해하였으나 피고가 고의로 원고의 특허를 침해한 것은 아니고, 특허침해로 인한 피고와 암로의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액에 관하여는 현재까지의 손해액이 미화 11,898,279달러이고 장래의 손해액에 대해서는 제품 단위 당 400달러의 합리적 실시료 상당이며, 806특허와 456특허는 진보성이 인정되어 무효가 아니라고 평결(Verdict)하였다.
③ 피고는 배심원의 평결에 불복하여 평결번복판결(Judgement as a
Matter of Law) 신청을 하였고, 미국 제1심법원은 평결번복판결 신청 중 일부를 받아들여 2009. 10. 30. ㉮ 피고 및 암로는 연대하여 원고에게,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으로서 미화 11,898,279달러, 2003. 1. 17.부터 2009. 10. 30.까지의 판결선고 전 이자 미화 977,508달러, 2009. 10. 8.부터 2009. 10. 30.까지 피고 제품의 판매로 인한 손해배상으로서 판매한 피고 제품 당 미화 500달러, 소송비용(미화 86,913.47달러)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미국 연방법(28 U.S.C. § 1961) 소정의 연 0.39%의 비율에 의한 판결선고 후 이자를 지급하고, ㉯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 of Civil Procedure) 65조
d항과 미국 특허법(Title 35 of the
United States code) 283조에 따라, 피고, 암로 등과 그와 관계된 사람은 503, 806특허의 만료일인 2010. 2. 5.까지 영구적으로 피고 제품 또는 그와 유사한 제품을 미국 내에서 제조, 사용, 판매, 판매에 제공, 미국 내로 수입하거나, 광고하여서는 아니 되며, ㉰ 354특허의 제55청구항 및 456특허의 제41청구항은 무효임을 선언하는 내용의 최종판결 및 영구적 금지명령(이하, ‘미국 제1심판결’이라 한다)을 선고하였다. 미국 연방법(28 U.S.C. §1961)은 연방법원이 선고하는 금원지급 판결에는 판결선고 후 이자(post-judgment interest)로 판결등록일(the date of entry of
judgment)부터 이자를 붙이고, 그 이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공시하는 1년 만기 국채의 1주당 평균이율 중 판결선고일에 선행하는 주의 평균이율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미국 제1심판결은 2009. 10. 30. 등록되었다.
④ 이에 피고 및 암로는 미국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United
State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 이하, ‘미국 제2심법원’이라 한다)에 항소하였고, 항소심에서는 미국 로펌인 베이커 앤 맥켄지 유한회사(Baker & McKenzie, LLP)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응소하였다.
⑤ 미국 제2심법원은 2012. 5. 25. 미국 제1심판결 중 806, 503특허 및 손해배상금의 지급에 관한 부분은 유지하고, 354특허의 제55청구항에 대한 무효 선언 부분은 파기한다는 내용의 판결(이하, ‘미국 제2심판결’이라 한다)을 선고하였고, 피고는 미국 제2심판결에 대한 상고를 포기하였다.
2. 법원의 판단
가. 미국판결의 확정
여부(민사집행법 27조 2항 1호 요건에
관하여)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라고 함은, 외국에서 사법상의 법률관계에 관하여 재판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우리나라의 법령에 비추어 실질적으로 보아 사법상의 법률관계에 대하여 당사자 쌍방의 심문을 보장하는 절차에 따라 법원이 종국적으로 내린 민사판결로서 구체적인 이행청구권을 표시하여 이행을 명하는 재판으로서 통상의 불복신청의 방법으로는 불복할 수 없는 상태로 된 것을 말하고, 외국판결이 확정되었는지는 그 판결을 한 외국의 법령이 정함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앞서 본 전제사실에 의하면, 피고가 미국 제2심판결에 대하여 상고를 포기하였으므로 미국 제1, 2심판결은 통상의 불복방법으로는 더는 불복할 수 없게 되어 확정되었다.
나. 국제재판관할권의 존부(민사소송법 217조
1항 1호 요건에
관하여)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우리나라에서 승인·집행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법령 또는 조약에 따른 국제재판관할의 원칙상 그 외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민사소송법 217조 1항 1호). 그리고 국제재판관할은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 및 경제를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편의 그리고 예측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및 판결의 실효성 등과 같은 법원 내지 국가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고, 이러한 다양한 이익 중 어떠한 이익을 보호할 것인지는 개별 사건에서 법정지와 당사자 사이의 실질적 관련성 및 법정지와 분쟁이 된 사안 사이의 실질적 관련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며(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등 참조), 이 경우 우리나라의 민사소송법의 토지관할에 관한 규정 또한 그 기본이념에 따라 제정된 것이므로, 그 규정에 의한 재판적이 외국에 있을 때에는 이에 따라 외국 법원에서 심리하는 것이 조리에 반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외국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3. 9. 26. 선고 2003다29555 판결 참조).
앞서 본 전제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미국 제1심법원에서 관할위반의 항변 없이 본안에 대하여 변론하였고,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배상을 구한 손해는 피고가 피고 제품을 미국에 수출, 판매함으로써 미국에서 특허 등록된 원고의 특허를 침해한 행위로 인한 것이므로 그 불법행위지 및 손해발생지가 미국 내이며, 청구에 대한 심리 대상은 미국에서 특허 등록된 원고 특허의 침해와 손해의 발생 및 범위에 관한 것이므로 미국법원으로 하여금 그 당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조리에 반한다고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 제1, 2심법원에 미국 소송에 대한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다.
다. 적법한 송달
등의 요건
충족 여부(민사소송법 217조
1항 2호 요건에
관하여)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우리나라에서 승인·집행되기 위해서는 패소한 피고가 소장 또는 이에 준하는 서면 및 기일통지서나 명령을 적법한 방식에 따라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송달받았거나(공시송달이나 이와 비슷한 송달에 의한 경우를 제외한다) 송달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소송에 응하였어야 한다(민사소송법 217조 1항 2호).
앞서 본 전제사실에 의하면, 피고가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여 미국 제1, 2심법원에서 변론하는 등 소송에 응하였으므로, 미국 제1, 2심판결은 민사소송법 217조 1항 2호의 요건도 갖추었다.
라. 상호보증의 여부(민사소송법 217조
1항 4호 요건에
관하여)
민사소송법 217조 1항 4호에 정해진 상호보증이 있을 것이라고 함은, 해당 판결을 한 외국법원이 속하는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법원이 내린 이와 같은 종류의 판결이 같은 조 각 호에서 정한 조건과 중요한 점에서 다르지 아니한 조건으로 효력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외국 사이에 같은 종류의 판결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외국에서 정한 요건이 우리나라에서 정한 그것보다 전체로서 과중하지 아니하며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라면 민사소송법 217조 1항 4호에서 정하는 상호보증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러한 상호의 보증은 외국의 법령, 판례 및 관례 등에 의하여 승인요건을 비교하여 인정되면 충분하고 반드시 당사국과의 조약이 체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으며, 당해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같은 종류의 판결을 승인한 사례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승인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이면 충분하다(대법원 2009. 6. 25. 선고 2009다22952 판결 참조).
이 사건에서 보면, 미국 제1심법원은 미국 연방법원 체계에 속해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Erie Railroad Co. v.
Tompkins, 304 U.S. 64(1938)}에 따라 연방법률, 조약 또는 해상과 같은 다른 연방 관할의 근거가 없는 한 외국판결의 승인과 집행은 주법의 문제이고, 외국판결의 집행을 위한 소는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 소송이 아니므로 주법원과 주법을 적용하는 연방법원은 연방법을 참조함이 없이 외국판결을 승인하고 집행하고 있어 외국판결의 승인과 집행 여부에 관하여도 주법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 텍사스주 민사소송 및 구제법(Civil Practice and
Remedies Code) 36조에 의하여 채택된 통일외국금전판결승인법(Uniform
Foreign Country Money-Judgements Recognition Act)은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217조, 민사집행법 26조, 27조와 대체로 동일한 내용이므로 미국 텍사스주에서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이 비슷한 조건에서 집행될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미국 텍사스주 사이에는 서로 상대국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상호보증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마. 공서양속의 위반
여부(민사소송법 217조 1항 3호의 요건에
관하여)
(1)
미국판결의 소송절차가 절차적 공서양속에 위반되는지
(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① 미국 제1심판결의 기초가 된 배심원 평결에 참여한 배심원들은 특허법 및 특허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지 아니한 미국의 일반 시민들로서, 소송절차에 관한 안내책자 또는 동영상 시청 등의 간단한 교육절차를 거쳐 소송의 심리 및 평결 절차에 참여하였다.
② 배심원들은 미국 제1심법원의 소송절차에서 원고 측 감정인 Keith R. Ugone(이하, ‘Ugone'이라 한다)과 피고 측 감정인 Sara D. Rinke(이하, ’Rinke'라 한다)가 특허침해로 인한 원고의 손해액을 어떤 증거에 기초하여 어떤 방식으로 산정하였는지에 관하여 감정인의 진술을 들은 다음 평결을 내렸는데, 배심원 평결에는 원고 특허의 효력 유무와 피고 제품의 원고 특허 침해 여부에 관한 판단이 간략하게나마 기재되어 있다.
③ 미국 제1심판결의 판결문에는 사실인정이나 증거판단, 손해액의 산정에 관한 이유가 설시되어 있지 않다.
(나) 민사소송법 217조 1항 3호는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할 것을 외국법원 확정판결의 승인 요건의 하나로 규정함으로써 외국의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공서양속에 위반되지 아니할 것을 승인의 요건으로 하고 있고, 여기에서 말하는 공서에는 승인대상판결의 내용에 관한 실체적 공서와 그 성립절차에 관한 절차적 공서가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외국판결을 승인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는 그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에서 외국판결의 승인이 우리나라의 국내법 질서가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외국판결이 다룬 사안과 우리나라와의 관련성의 정도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하고, 이 경우에 그 외국판결의 주문뿐 아니라 이유 및 외국판결을 승인할 경우 발생할 결과까지 종합하여 검토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참조). 그러므로 외국에서 재판을 하더라도 관철되어야 하는 우리 법상의 절차적인 기본원칙이 외국의 소송절차에서 침해된 경우에는 외국재판의 승인은 절차적 공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외국법원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경우, 외국법원이 당사자에게 방어의 기회를 주지 않거나, 당사자가 적법하게 대리되지 않은 경우 또는 사기에 의하여 외국재판이 획득된 경우에는 그 외국재판의 승인은 대한민국의 절차적 공서에 반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절차상의 차이나 판결에 이유를 붙이지 아니한 것만으로는 절차적 공서 위반이 아니고(대법원 1990. 4. 10. 선고 89다카20252 판결 참조), 직업법관이 아니라 배심에 의한 재판이라는 이유만으로 절차적 공서위반이라고 볼 수도 없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미국 제1심판결은 특허소송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배심원들이 감정인의 의견에 의존하여 내린 평결에 기초하여 선고되었으므로, 직업법관에 의해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하고 손해액을 산정하는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다른 부분이 있다. 또 미국 제1심판결의 판결문에 손해액의 산정 근거 등에 관하여 아무런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아 판결문에 이유를 기재하도록 한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208조 2항과 다르다.
그러나 미국 제1심법원이 미국법령에 따른 관할권이 없는 법원이라고 보이지 않고, 미국 특허법 284조는 법원은 손해액이나 합리적인 사용료를 결정함에 있어 전문가 증인의 증언을 들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손해액 산정에서 법원의 능력을 전문가증언을 통하여 보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는 미국 소송 과정에서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여 응소하는 등 관련 쟁점에 관하여 충분히 주장·입증할 기회를 보장받았으며, 배심원 평결에 간략하게나마 원고 특허의 효력 유무 등에 관한 판단이 기재되어 있고, 그 밖에 미국의 배심원 재판제도의 운용방식, 그에 대한 제반 법률내용 등에 비추어, 미국 제1심법원이 피고의 주장과 같이 미국 내에서 특허침해의 인용비율 등이 높다거나 특허침해사건인 미국 소송이 직업법관이 아닌 배심원이 감정인의 의견에 의존하여 평결에 이르게 되는 등 직업법관만으로 이루어진 재판과 구분되는 절차가 개재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민사소송법 202조에 정해진 자유심증주의와 같은 사실인정의 방식이 전면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으며, 미국 제1심법원의 판결문에 손해액의 산정 근거 등에 관하여 자세한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미국 제1심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내법 질서가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볼 수는 없다.
(2)
미국의 계속출원제도에 따른 신규성 인정과 수치한정발명의 진보성 인정이 공서양속에 위반되는지
(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① 354특허의 출원일은 1998. 5. 12.로서, 그 특허 출원일 이전인 1994. 11. 무렵 출원된 ‘JetScan 4062’라는 선행기술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354특허의 출원은 미국 (특허번호 1 생략)특허로 등록된 미국 출원번호 (출원번호 1 생략)출원의 계속출원에 해당된다고 인정되어, 그 출원일이 (출원번호 1 생략)출원의 접수일인 1995. 3. 7.로 소급되었고, 그에 따라 354특허는 선행기술로부터 1년 이내에 출원된 것으로 평가됨과 동시에 신규성에 관한 미국 특허권의 요건을 충족함으로써 특허 등록되었다.
② 806특허는 지폐에 인쇄된 표지의 광반사 특성을 사용하여 다양한 액면의 지폐를 자동식별하고, 계산하는 장치와 방법에 관한 특허로서 청구항에 ‘분당 800장 이상의 속도로 액면을 식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③ 미국 제1, 2심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원, 피고 사이에 354특허 중 제55청구항과 806특허 중 제58, 85, 120청구항의 효력에 관한 다툼이 있어 그에 대한 심리가 이루어졌는데, 미국 제1심판결은 354특허 중 제55청구항이 유효라고 인정한 배심원 평결에도 불구하고 피고의 평결번복판결(Judgement as a
Matter of Law) 신청을 받아들여 제55청구항이 무효라고 판시하였으나, 이후 미국 제2심판결이 이를 파기함으로써 제55청구항의 유효성을 인정하였다.
(나) 집행판결은 분쟁의 신속한 해결과 소송경제 등의 관점에서 외국판결의 효력을 승인하고 이에 집행력을 부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므로 그 재판내용에 관해서 사실인정이나 법률판단 등이 적절하였는지 어떤지를 다시 심사하는 것은 걸맞지 아니하다. 이에 민사집행법 27조 1항은 집행판결은 재판의 옳고 그름을 조사하지 아니하고 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위와 같은 실질재심사(revision au fond) 금지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재판의 옳고 그름을 조사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외국판결이 우리나라의 법령에 비추어 시인할 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당 외국의 실체법 및 절차법에 비추어 시인할 수 있는 것인지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위와 같은 실질재심사금지 원칙에 따라 집행국 법원이 외국판결의 내용에 대한 당부를 심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민사소송법 217조에서 규정한 외국판결의 승인요건을 갖추었는지를 심사하는 범위 내에서는 외국판결의 본안에서 판단된 사항에 대하여도 집행국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대법원 1988. 2. 9. 선고 84다카1003 판결 참조). 그러나 청구권의 유무에 관해서 실체심리를 한다면 집행판결제도의 의미가 없게 되므로 이런 의미에서 실체심리를 다시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외국판결이 우리나라가 채택하지 아니한 제도에 근거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곧바로 민사소송법 217조 1항 3호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보면, 특허법은 출원인이 ‘공업소유권의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의 동맹국의 제1국에 최초로 정규의 특허출원을 하면, 그 출원인이 1년 이내에 동맹국의 제2국에 동일한 내용의 출원을 하는 경우 신규성·진보성 및 선출원 등의 판단을 함에 있어서 제1국에 대한 출원에 대한 최초 출원시를 기준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54조 1항, 2항) 선출원한 특허발명의 내용을 포함하는 포괄적 발명을 나중에 출원하는 경우, 일정한 요건 하에 그 포괄적 발명의 내용 가운데 당초의 명세서 및 도면에 포함되어 있던 내용에 관하여 선출원시로 출원일을 소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55조). 그리고 우리나라 대법원은 어떠한 출원발명이 그 출원 전에 공지된 발명이 가지는 구성요소의 범위를 수치로서 한정하여 표현한 경우에는 그 출원발명에 진보성을 인정할 수 있는 다른 구성요소가 부가되어 있어서 그 출원발명에서의 수치한정이 보충적인 사항에 불과한 것이 아닌 이상, 그 한정된 수치범위 내외에서 이질적이거나 현저한 효과의 차이가 생기지 아니한다면 그 출원발명은 그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통상적이고 반복적인 실험을 통하여 적절히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단순한 수치한정에 불과하여 진보성이 부정되고, 그 출원발명이 공지된 발명과 과제가 공통되고 수치한정의 유무에서만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 출원발명의 명세서에 한정된 수치를 채용함에 따른 현저한 효과 등이 기재되어 있지 아니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이 한정한 수치범위 내외에서 현저한 효과의 차이가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2007. 11. 16. 선고 2007후1299 판결 등 참조)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는 미국 제1, 2심판결 과정에서 원고의 특허의 효력에 관하여 다툴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았다고 보이는데,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특허법령에 따라 354특허의 제55청구항의 신규성과 806특허의 진보성 인정 여부를 다시 판단하게 되면 이는 미국 제1, 2심판결의 옳고 그름을 조사하는 것에 해당하여 실질재심사금지 원칙에 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특허권의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권자의 실시권은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의 영역 내에서만 그 효력이 미치는 것일 뿐, 특정 국가에 등록된 특허권이 전 세계에서 인정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하고, 세계 각국의 특허법이 규정하는 특허 요건의 내용 및 엄격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이상, 미국 특허권의 요건은 미국 특허법이 아닌 우리나라 특허법에 의하여 판단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미국 특허법에 의해 인정된 특허 요건을 우리나라에서도 인정하는 결과를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도 우리나라 특허법이 아닌 공서양속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계속출원제도는 원 출원에 따른 심사가 기대된 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원 출원의 출원일의 이익을 유지하면서 이를 보완하여 다시 심사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서 우리나라에도 특허법 55조의 국내우선권제도 또는 특허법 47조의 출원보정제도 등 유사한 제도가 있고, 우리나라 역시 수치한정발명에 대해 일정한 요건 하에 진보성을 인정하고 있는 이상 비록 우리나라 특허법 및 ‘공업소유권의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의 우선권제도(Right of Priority)가 출원일의 소급범위를 1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의 계속출원제도가 출원일의 소급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차이가 있고, 피고의 주장과 같이 806특허가 우리나라 특허법에서 임계적 의의가 없는 수치한정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354특허의 제55청구항과 806특허가 유효라고 인정한 미국 제1, 2심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공서양속에 위반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음 글에서 계속됨)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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