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방법원 2018. 8.
31. 선고 2017노1750 판결
행정청의 행정처분(토양정화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하여 위 행정처분이 사전통지를 하지 않는 등의 절차적인 하자가 존재하여 위법하므로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사건입니다.
1. 공소사실
오염토양에 대하여 관할관청으로부터 기간을 정하여 정화 조치명령을 받은 정화책임자는 위 명령을 이행하여야 한다. 피고인은 2015. 10. 17.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토지(이하 ‘이 사건 토지’라고 한다)에서 지하수개발을 위해 관정을 뚫다가 송유관을 파손하여 토양에 토양오염물질인 TPH, 벤젠, 자일렌 등이 함유된 석유를 누출시킴으로써 토양오염을 발생시켰다(이하 ‘이 사건 토양오염’이라 한다). 피고인은 2016. 2. 22. 전북 완주군에 있는 사무실에서 정해진 기간(2016. 2. 18.~2017. 2. 17.) 내에 위 오염토지에 대한 정화조치를 하라는 취지의 전주시 완산구청장 명의의 ‘오염토양정화명령서’(이하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이라 한다)를 수령하였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위 기간 내에 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하였다.
2. 법원의 인정
사실
(가) 소방서와 대한송유관공사 등은 이 사건 토양오염이 발생한 직후 사고현장에 출동하여 기름이 유출된 주변 지역에 흡착포를 포설하여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고, 자연 유하로 흘러나온 경유는 대형 탱크로리로 회수하였으며, 파손된 송유관은 2015. 10. 18.까지 보수ㆍ복구하였다.
(나) 완산구청장은 2015. 10. 19. 대한송유관공사에 이 사건 토지에 대한 토양오염도검사를 지시하였고, 대한송유관공사는 재단법인 자연환경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하였으며, 재단법인 자연환경연구소는
2015. 10. 23. 토양오염우려기준을 초과하는 토양오염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내용의 검사결과를 통보하였다.
(다) 완산구청장은 2015. 10. 26. 피고인에게 2016. 1. 26.까지 토양정밀조사를 실시한 후 이행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고, 이에 피고인은 재단법인 그린환경연구원에 토양정밀조사를 의뢰하였다. 재단법인 그린환경연구원은
2016. 1. 26. ‘오염물질ㆍ농도:
TPH 12,338.72mg/kg, 벤젠
2.3mg/kg, 자일렌
188.51mg/kg , 오염면적: 1,522.89㎡, 오염토양: 3,672.88㎡’라는 내용의 정밀조사결과를 통보하였고, 피고인은 완산구청에 위 조사결과를 첨부하여 이행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라) 완산구청장은 2016. 2. 17. 피고인에게 2017. 2. 17.까지 오염토양을 정화하고 그 이행을 완료하면 이행보고서를 지체 없이 제출하라는 내용의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을 하였는데, 해당 공문 5항에는 ‘행정절차법 제21조 제4항 제1호의 규정에 따라 공공의 안전 및 복리를 위한 긴급한 처분이 필요하여 행정처분의 처분사전통지를 생략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마) 피고인은 오염토양정화 계획을 제출하는 등 오염토양을 정화하기 위한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고, 완산구청 담당공무원은 2017. 2. 17. 이 사건 토지에 방문하여 토양오염정화 상태를 점검하였으나 정화작업이 이행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바) 완산구청장은 2017. 2. 23. 2순위 정화책임자인 대한송유관공사에
2017. 3. 10.까지 정화조치명령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라는 내용의 사전통지를 하였고, 대한송유관공사 호남지사는 2017. 3. 10. 이행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사) 그러나 완산구청장은 2017. 3. 17. 대한송유관공사에 이행기간을 1년으로 유지하되 부득이하게 토양정화작업을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1년의 범위에서 2회까지 이행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답변하면서, 2018. 3. 16.까지 오염토양을 정화하라는 정화조치명령을 하였다.
3. 법원의 판단
– 처분의
행정절차법 위반
행정절차법 제21조 제1항, 제4항, 제22조에 의하면,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미리 처분하려는 원인이 되는 사실과 처분의 내용 및 법적 근거, 이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는 뜻과 의견을 제출하지 아니하는 경우의 처리방법 등의 사항을 당사자 등에게 통지하여야 하고, 다른 법령 등에서 필수적으로 청문을 실시하거나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도 당사자 등에게 의견제출 기회를 주어야 하되, ‘해당 처분의 성질상 의견청취가 현저히 곤란하거나 명백히 불필요하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하여 처분의 사전통지나 의견청취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 따라서 행정청이 침해적 행정처분을 하면서 당사자에게 위와 같은 사전통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의견제출 기회를 주지 아니하였다면, 사전통지를 하지 않거나 의견제출 기회를 주지 아니하여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한 그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를 면할 수 없다. 나아가 해당 처분이 당연무효가 아니더라도 위법한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그 처분을 이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하여 그 불이행에 따른 관련 법률의 위반죄가 성립할 수 없다(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7도7321 판결 참조).
행정절차법은 국민의 행정 참여를 도모함으로써 행정의 공정성ㆍ투명성, 신뢰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인 점, 처분의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 절차를 통하여 국민의 권익에 대한 위법ㆍ부당한 침해를 사전에 방지하고 행정청으로 하여금 자기시정의 기회를 갖도록 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예외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함이 타당하다.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행정절차법 제21조 제4항 제1호에서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예외적인 사유로 규정하는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여,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절차를 생략한 채 이루어진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은 절차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이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하여 토양환경보전법 제29조 제1호, 제11조 제3항의 위반죄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있다.
(가) 이 사건 토양오염이 발생한 직후부터 그 다음 날까지 송유관에서 유출된 경유를 제거하고 파손된 송유관을 보수ㆍ복구하는 등 추가적인 토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완산구청장은 이 사건 토양오염이 발생한 날인 2015. 10. 17.로부터 무려 4개월이 지난 2016. 2. 17.에서야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을 하였는데, 완산구청에서는 그 기간 동안 피고인에게 토양정밀조사를 하도록 명령한 것 이외에는 토양오염의 추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바,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절차를 생략하여야 할 정도로 이 사건 토지를 긴급하게 정화하도록 할 필요가 크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나) 완산구청장은 피고인 및 대한송유관공사에게 이행기간을 1년으로 정하여 토양정화를 명하였고, 대한송유관공사는 정화업체와 검증기관을 선정하고 주변 토지 사용을 위한 협의를 거쳐 부지 내 정화공법(In-situ)에 따라 이 사건 토지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2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즉, 피고인이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에 따라 토양정화작업을 완료할 때까지 기본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긴급한 처분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 완산구청장은 피고인과 달리 후순위 정화책임자인 대한송유관공사에 대하여는 토지정화를 명하기 전에 사전통지를 하고 의견청취를 하였는데, 사전통지를 한 2017. 2.
23.로부터 의견을 청취한 2017. 3. 10.까지의 기간은 15일에 불과하였다. 위 (가). (나).항과 같은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을 하기 이전의 상황, 정화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이 사전통지와 의견청취절차를 거치는데 필요한 약 2주의 기간을 앞당겨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토양오염의 추가적인 확산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라) 한편 완산구청장은 이 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하여 ‘사고원인 행위자가 명확하고, 유류로 인한 토양오염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범위가 확산되며, 지하수 관정 설치공사 중 기름이 유출되어 지하수까지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민들이 오염된 지하수를 음용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공공의 안전을 위하여 즉각적인 오염 확산방지 및 제거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행정절차법 제21조 제4항 제1호, 같은 법 시행령 제13조에 따라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절차를 생략하였다.’고 회신하였다. 그러나 완산구청 생태공원녹지과 담당공무원이었던 C은 당심에서 ‘이 사건 토양오염으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되었을 것으로 추측하였을 뿐이고, 지하수의 오염 정도, 오염물질의 확산 속도 등에 대하여 추가적인 조사나 실험을 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즉, 완산구청 담당공무원은 객관적인 근거 없이 주관적인 추측을 바탕으로 긴급히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이 사건 정화 조치명령에 앞서 피고인에 대하여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절차를 만연히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마) 피고인은 제소기간 내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으나,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이 당연무효가 아니더라도 위법한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피고인을 이 사건 정화조치명령의 불이행으로 인한 토양환경보전법 제29조 제1호, 제11조 제3항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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