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2017. 3. 30. 선고 2016나2071844 판결
의료인이 아닌 갑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을 법인과 ‘을 법인 명의로 개설될 병원의 운영에 관하여 갑은 독점적인 사업권을 가지고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부담하면서 그의 책임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을 법인은 갑이 정하는 사람을 상임이사로 하여 그에게 병원 운영 전반의 업무수행 및 결정권한을 부여하며, 병원의 직원은 실질적으로는 갑이 채용하되 형식적으로는 을 법인이 채용하는 것으로 하고, 병원 수익금은 을 법인의 목적 사업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한 사안에서, 위 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반하여 무효라고 한 사례입니다.
1. 사안의 개요
(1)
원고는 교통약자의 요양 및 재활치료와 관련된 병의원, 요양원 설치 및 운영 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비영리법인)이다. 피고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는 아니면서 병원의 행정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이다.
(2)
원고와 피고는 2015. 5. 1. 원고가 설립할 병원에 관하여 이 사건 약정을 체결하였다.
(3)
원고는
2015. 8. 28. 피고에게 이 사건 약정을 해지한다는 취지의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하였고, 그 내용증명 우편이 그 무렵 피고에게 도달하였다.
2. 법원의 판단
(1)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의하면, ①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②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③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의료법인), ④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준정부기관,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방의료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에 따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제87조 제1항 제2호에 의하면, 제33조 제2항을 위반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2)
의료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여 시설을 갖추고 유자격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하고, 의료기관의 운영 및 손익 등이 그 일반인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내용의 약정은 강행 법규인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배되어 무효이다(대법원 1995. 12. 12. 선고 95도2154 판결, 대법원 2003. 4. 22. 선고 2003다2390, 2406 판결 등 참조).
의료법이 제33조 제2항에서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기타 비영리법인 등이 아닌 자의 의료기관 개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제87조 제1항 제2호에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의료전문성을 가진 의료인이나 공적인 성격을 가진 자로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건전한 의료질서를 확립하고, 영리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국민 건강상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위 의료법 조항이 금지하는 의료기관 개설행위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14. 9. 25. 선고 2014도7217 판결 등 참조).
(3)
앞서 인정한 사실과 아래와 같은 이 사건 약정의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약정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피고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원고의 명의를 이용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이 사건 약정에 피고는 원고의 중앙회 업무에 대하여 관련 자료 및 기타 세무회계 자료를 피고의 책임하에 제출하여 중앙회 업무에 협조하여야 한다는 내용(제3조 중 피고에 관한 부분 제1항)과 피고는 피고의 사업과 관련된 모든 운영상태 및 손익상황을 종합하여 원고의 요구가 있을 시 즉시 제출, 보고하여야 한다는 내용(제3조 중 피고에 관한 부분 제3항)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이는 원고 명의로 병원이 개설되지만 피고가 전적으로 이를 운영하는 것과 관련하여 원고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둔 것에 불과하고, 위와 같은 이 사건 약정 내용을 들어 피고가 실질적으로 병원을 개설, 운영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외에 판례가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반하여 무효라고 판단한 유형과 달리 이 사건 약정을 유효라고 볼 예외적인 사정이 부족하다.
① 원고 명의로 개설될 병원의 운영에 관하여 피고가 독점적인 사업권을 가진다(제6조).
② 피고가 원고 명의로 개설될 병원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제3조, 제4조, 제7조).
③ 원고 명의로 개설될 병원은 피고의 책임으로 운영된다(제7조).
④ 원고는 피고의 사업 진행을 위한 이사 선임에 적극 협조하고, 피고가 지정하는 사람을 상임이사로 하여 병원 운영 전반의 업무수행 및 결정권한을 부여한다(제3조 중 원고에 관한 부분 제1항, 제3항).
⑤ 원고 명의로 개설될 병원 직원을 실질적으로 피고가 채용하되 형식적으로만 원고가 채용하는 것으로 한다(제7조).
⑥ 원고 명의로 개설될 병원의 수익금은 원고의 목적 사업을 위하여 사용한다(제3조 중 피고에 관한 부분 제5항, 이 사건 약정서에 병원 수익금이 피고에게 귀속된다는 명시적인 조항은 없다. 그러나 원고와 피고는 피고가 원고 명의로 개설될 병원에 관한 독점적인 ‘사업권’을 가진다고 약정하였고, 피고가 병원 운영에 관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였으며, 수익금을 ‘원고의 목적 사업’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위 조항에 의거하여 병원의 수익금이 다시 병원 운영에 사용될 수 있으므로, 결국 원고와 피고는 병원 수익금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피고에게 귀속시키기로 합의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병원은 운영이 핵심이므로 순수익금은 병원 운병비를 제외한 돈이다. 그런데 병원 운영비의 적정성을 담보하거나 순수익금을 다시 병원 운영비로 사용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 수 단이나 방법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아니하다. 그리고 피고가 병원 운영에 관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도 피고에게 병원 운영의 이익은 귀속시키지 않는 내용의 약정을 하였다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다).
(4)
따라서 이 사건 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반하여 무효이고, 피고가 이를 다투고 있는 이상, 원고가 무효인 이 사건 약정에 기한 계약관계의 부존재 확인을 구할 이익도 있다. 원고는 법인격이 있는 단체인 사단법인이므로, 특정한 개인이 원고를 소유하거나 지배한다고 볼수 없고(민법 제57조, 제58조에 의하면, 법인은 이사를 두어야 하고, 이사가 법인의 사무를 집행하며, 이사가 수인인 경우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법인의 사무집행은 이사의 과반수로써 결정하여야 한다), 단체로서의 독립성이 있다. 그러나 앞서 판단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약정은 병원의 개설 명의만을 원고로 하고 병원의 운영에 관한 모든 부분을 피고가 하기로 하는 내용이므로(원고가 병원 개설,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을 전제로, 피고로부터 투자를 받아 이익을 분배하는 내용 또는 피고에게 병원의 운영을 위탁하고 그 보수나 비용을 지급하는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 약정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반하여 무효라고 판단하더라도 원고의 단체로서의 독립성을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약정이 사단법인으로서의 원고 법인격, 독립성을 형해화하거나 그 본질을 부정할 정도는 아니나, 이 사건 약정 핵심은 개인인 피고가 병원 운영과 그 운영에 따른 조직, 인사, 보수 및 대가 지급 등을 사실상 배타적으로 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사단법인 본질, 민법과 의료법이 규정한 각 강행법규 등에 비추어, 사단법인이 병원 운영 등을 하는 외관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피고가 병원을 운영하기로 하는 이 사건 약정을 유효로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 약정 당사자는 사단법인인 원고와 개인인 피고이다. 계약 자유의 원칙에 비추어 사단법인과 개인의 계약을 일반적으로 금지할 근거는 부족하다. 그러나 사단법인이 스스로 사단법인의 조직 구성에 관하여 타인과 계약을 한 이 사건 약정은, 피고가 이사, 감사의 각 1/2을 구성하고, 피고가 정하는 이사를 상임이사로 하여 본회 수익사업 전반의 업무수행 및 결정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더구나 원고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공익법인법)에 규정된 감독 등을 받지 아니하고 있다. 이러한 각 사정은 사단법인의 고유한 목적과 조직에 부정적이거나 반하는 내용일 수 있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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