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2018. 5. 10. 선고 2017나2037841 판결
개인투자자가 은행과 증권사에 대하여 시세조종행위로 인한 구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책임과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구한 사안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시세조종행위에 관하여 검찰 고발 등 제재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공식발표를 한 시점에 민법상 불법행위가 있었음을 알았다고 보아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인정한 사례입니다. 구체적인 판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사실 관계
(1)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가 있었던 2010. 11. 11. 당일 언론매체에서 피고 ○○○증권의 창구에서 발생한 주식 대량매도로 코스피200 지수가 폭락하였다는 보도가 있었고, 다음날 금융감독원이 위 주식 대량매도의 불공정거래 여부에 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는 대대적인 보도가 있었다.
(2)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11. 2. 23. ‘피고 ○○○은행의 계열사 직원들이 시세조종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함에 따라 관련자에 대하여 검찰 고발, D에 대한 6개월의 정직 요구, 피고 ○○○증권에 대한 일부 영업정지 6개월 등의 엄중한 제재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발표 내용이 일간신문, 주요 경제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3)
위 언론보도 직후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피고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위 투자자들은 구 자본시장법 제177조 제1항, 제176조 제4항 제1호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가 없었더라면 장 마감 당시 형성되었으리라고 인정되는 정상주가지수와 위 시세조종행위로 인하여 형성된 주가지수의 차이를 기초로 산정한 금액을 손해액으로 구성하였다. 위 투자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제기 사실이 언론매체를 통해 계속 보도되었다.
(4)
검찰은
2011. 8. 19. 피고들의 직원 및 피고 ○○○증권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혐의로 기소하였다고 발표하였고, 그 이후 국내 금융기관 및 보험회사, 외국인 투자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이어졌으며, 이에 관한 언론보도도 계속되었다.
(5)
피고들과 D 등이 금융감독원 등의 고발 조치에 반발하고, 관련 민, 형사소송에서 시세조종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기는 하였다. 그런데 원고들이 투자한 옵션상품은 금융투자상품 중에서도 초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되고, 2010. 1. 1.부터 같은 해 12. 31.까지 원고들의 일일 평균 주문횟수는 적게는 19회에서 많게는 214회에 이른다. 비록 원고들이 구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전문투자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금융상품시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비교적 풍부하다고 판단된다.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가해자를 안다고 함은 사실에 관한 인식의 문제일 뿐 사실에 대한 법률적 평가의 문제가 아니고(대법원 1993. 8. 27. 선고 93다23879 판결 참조),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위반자에 대한 유죄의 형사판결이 선고되거나 확정된 때부터 기산되어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대법원 2002. 12. 26. 선고 2000다23440, 23457 판결 등 참조). 금융상품거래에 대한 원고들의 경험에다 앞에서 본 금융감독원 등의 제재, 검찰의 공소제기 및 투자자들의 민사소송 제기와 이에 관한 언론보도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로서는 A 등 피고들 직원들의 주식 대량매도 행위가 시세조종행위로서 위법하다고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봄이 옳고, 전문투자자들과 달리 소멸
시효 기산일을 정해야 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6)
D와 피고 ○○○증권에 대한 형사판결이 2016. 1. 25.에야 선고되었고, 민사소송에서 수년간 위법행위의 존재, 위법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여부 등이 치열하게 다투어진 끝에 피고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민사판결 등이 2015. 11. 무렵부터 선고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원고들의 옵션상품은 행사가격과 옵션만기일의 코스피200 지수와의 차이에 따라 손해액이 달라지는 파생상품이다.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로 인하여 코스피200 지수는 동시호가 직전에 비하여 불과 10분 사이에 254.62에서 247.51로 2.79%나 하락하였는데, 이는 다른 옵션만기일의 평균 등락폭인 0.06%의 46.5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사건 당일의 사태를 ‘옵션쇼크’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로 인하여 옵션거래규모 세계 1위인 국내증권시장의 안정성과 투명성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원고들로서는 적어도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로 자신들의 손해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더구나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보도자료에는 피고 직원들의 공모방법,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로 인한 코스피200 지수의 변동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 판단에 있어서 피해자가 손해의 액수나 정도를 구체적으로 알았다고 할 필요까지는 없으므로(대법원 1999. 11. 23. 선고 98다11529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은 적어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조사결과를 발표한 2011. 2. 23. 무렵에는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7)
피고 ○○○은행이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기소되지 않기는 하였으나,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보도자료, 관련 언론보도 등을 통해 피고 ○○○은행 홍콩지점의 직원들이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를 주도하였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원고들이 2011. 2. 23. 이후 피고 ○○○은행에 대하여 사용자책임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8)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불성취 등 법률상 장애사유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5. 4. 28. 선고 2005다3113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2011. 2. 23. 이후 피고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법률적 장애사유도 보이지 않는다.
(9)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이 금융위원회가 2011. 2. 23. 발표한 피고 ○○○증권에 대한 일부 영업정지 6개월의 처분은 2011. 3. 3. 피고 ○○○증권에 도달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 ○○○증권이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2011. 5.
31.경 위 처분은 확정되었으며, 2011. 9. 30. 위 처분의 집행이 종료되었다.
2. 법원의 판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민법 제766조 제1항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한다.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서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다30440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은 피고들의 직원과 피고 ○○○증권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징계 요구 및 영업정지 등의 제재조치가 있었던 2011. 2. 23. 무렵에는 피고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설령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원고들이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불법행위를 안 날을 정부당국의 조치가 확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고들은 늦어도 피고 ○○○증권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된 2011. 5. 31.경에는 피고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2011. 2. 23.경부터 진행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들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2011. 5. 31.경부터는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원고들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6. 1. 26.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원고들의 위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피고들은 구자본시장법 제177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가 있었던 2010. 11. 11.부터 3년이 경과함으로써 시효로 소멸하였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민법 제766조 제1항에 따라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위 주장에 대하여는 따로 판단하지 않는다).
정회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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